EMO 의 아이콘 MCR 이 돌아왔다🤘마이 케미컬 로맨스 My Chemical Romance 이야기
📌 먼치 POINT
1.My Chemical Romance
9.11 테러 사건을 본 제라드 웨이는 밴드 결성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
맷 펠리시어, 레이 토로, 마이키 웨이와 함께 앨범 제작
이모셔널 하드코어를 뜻하는 이모 밴드의 대표적 그룹
최근 코로나 팬데믹과 Y2K 리바이벌을 통해 재조명
2013년 해체 이후, 다시 재결합 하며, 2026년 내한 예정
2.MCR의 음악
[1집] I Brought You My Bullets, You Brought Me Your Love
- 고딕, 호러 전쟁물 등 여러 장르의 코믹북을 연상[2집]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
- 1집 대비 대중적이며 자기 상실을 보여준 앨범[3집] The Black Parade
- MCR을 정상에 올려준 록 오페라를 선보인 앨범
- 10대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오해를 받은 작품[4집] Danger Days: The True Lives of the Fabulous Killjoys
- 신사이저를 통한 하이컬러 펑크 음악
밴드의 탄생

2001년,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9.11 테러 당시 만화가를 꿈꾸며 카툰 네트워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제라드 웨이는, 이 사건을 직접 목격한 것을 계기로 밴드를 결성하여 세상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 제라드 웨이는 비장한 마음으로 동료들을 모아 밴드를 결성했다. 그의 고등학교 친구 맷 펠리시어는 제라드 웨이가 쓴 곡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드러머로 합류했으며, 과거 밴드 활동을 같이 했던 레이 토로를 기타리스트로 영입했다.
그의 친동생인 마이키 웨이도 밴드의 데모를 듣고 대학을 자퇴하면서 밴드에 합류했다.당시 서점에서 일하던 마이키 웨이는 스코틀랜드 소설가이자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원작 소설 작가로 유명한 어빈 웰시의 책 제목인 ‘3 Tales of Chemical Romance’에서 영감을 얻어 밴드 이름을 마이 케미컬 로맨스라고 지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성된 MCR은 드러머 맷 펠리시의 다락방에서 데모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데모가 당시 인디씬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모코어 밴드 thursday를 배출한 인디 펑크 계열 레이블 아이볼 레코드에 전달되었고,함께 공연하며 친분을 쌓은 thursday의 보컬 제프 레이클리가 프로듀싱을 맡아, 결성 3개월 만에 데뷔 앨범을 제작한다.
마지막으로 MCR에 많은 도움을 주며 친하게 지냈던 프랭크 아이에로가 리듬 기타리스트로 합류하면서 MCR의 완전한 체제가 갖춰졌다. 그 후 결성 1년이 채 되지 않은 2002년 7월, MCR은 데뷔 앨범인 ‘I Brought You My Bullets, You Brought Me Your Love’를 발매했다.
이모 장르와 MCR의 정체성

이 앨범은 고딕, 호러, 전쟁물 등의 여러 장르의 코믹북을 연상시키는 앨범이다. 만화가를 꿈꿨던 제라드 웨이는 1인칭 시점으로 가사를 썼고 가사 속 인물이 되어 연기하는 듯 노래해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우울증, 알코올 중독, 사랑하는 이의 죽음, 자해, 중독, 비극 등 제라드웨이가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어둡고 우울한 주제로 가상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MCR은 감성적인 이야기를 펑크록과 하드코어 펑크 기반의 음악에 담아낸다. 이들의 음악은 본인들이 이모 밴드와 자신들은 유사성이 없다며 이모는 쓰레기라고까지 하면서 부정했지만, 어느 순간 MCR은 이모 장르의 대표 밴드로 불리고 있다.
당시 더 유즈드, 테이킹 백 선데이, 핀치, 폴아웃보이, 지미 이트 월드, 대시보드 컨페셔널, 패닉 앳 더 디스코 등 이모 밴드들이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급부상하면서 마이 케미컬 로맨스도 덩달아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모라는 장르는 이모셔널 하드코어, 감정적인 하드코어의 줄임말이다. 1980년대 미국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이 정치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가사에 선동적이고 공격적인 음악을 선보이자, 이 음악들을 더 서정적이고 부드럽게 변형하여 우울과 분노, 슬픔 등 개인적인 감성을 표출하는 음악이 바로 이모였다.
80년대 라이츠 오브 스프링, 엠브레이스 등의 밴드들을 시작으로 90년대 써니 데이 리얼 에스테이트, 조아 브레이크, 미네랄, 아메리칸 풋볼 등의 밴드들이 더 멜로디컬하게 팝적으로 음악을 다듬었고, 2000년대가 들어서면서 이모는 본격적으로 메인스트림 장르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모 패션도 덩달아 유행하기 시작한다. 아이라이너와 검은색 네일, 스키니진과 타이트한 티셔츠, 얼굴을 덮은 샤기컷 헤어스타일 등으로 대표되는 이모 패션을 하는 이들을 이모 키즈라고 부르기도 했다. 게다가 이모는 2010년대 힙합 씬에도 영향을 끼쳐 이모 랩이라는 장르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모 밴드들은 불안, 우울, 상실, 자해, 자살, 우울증 등 개인의 감성적인 주제를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노래하여 이모라는 장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MCR과 같은 이모 밴드들은 이러한 감성적인 가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버티자,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Z세대와 이모의 부활

아이러니하게도 2010년대 후반 Z세대를 중심으로 이모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는 Z세대들이 팬데믹을 겪으면서 외로움과 불안, 고립감이 더 커지면서 팝이나 힙합에서 말하는 파티나 허영의 쿨함을 노래하는 것이 Z세대들에게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솔직하고 부끄러울 정도의 내면의 감정, 정신 건강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더 공감하게 되었는데 이런 감정을 잘 표현한 게 바로 이모였다.
게다가 Y2K 리바이벌도 겹치게 되면서 틱톡을 중심으로 2000년대 이모 밴드들의 곡들이 밈으로 유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XXXTentacion과 Juice WRLD 같은 이모 랩의 교차점이 생기면서 이모 컬처가 Z세대들을 중심으로 리바이벌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이모 리바이벌 중심에는 마이 케미컬 로맨스가 있었다.
두 번째 앨범의 특징과 성과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데뷔 앨범은 솔직하고 거친 로파이 사운드에 고딕, 호러 펑크 스타일을 가미하여 다른 이모 밴드와 차별화되었고, 이모 씬에 큰 영향을 주었다.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마이스페이스 등을 통해 무료 다운로드를 제공하고 클럽을 중심으로 공연을 하면서 입소문을 타, MCR만의 충성 팬을 모으게 되었다.
이렇게 데뷔 앨범으로 소소한 주목을 받은 MCR은 이모 밴드들의 급부상과 함께 메이저 레이블 리프라이즈 레코드와 계약을 맺게 되었고, 2004년 두 번째 앨범이자 메이저 데뷔 앨범이자 출세작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를 발매했다. 이 때, 드러머 맷 펠리시어가 앨범 녹음을 완료했으나, 밴드 내부 사정으로 드러머가 교체되면서 원래 사운드 엔지니어였던 밥 브라이어가 드러머로 합류하게 되었다.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는 인디 시절의 거칠고 날 것의 사운드를 깔끔하게 다듬고 대중들이 더 쉽게 다가가기 쉬운 정돈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팝 펑크적 멜로디와 하드코어 펑크 특유의 에너지를 잘 조합해 MCR만의 음악적 요소를 완성시킨 앨범이었다.
만화가를 꿈꿨던 제라드 웨이답게 이 앨범에는 죽음과 복수, 사랑 등 다양한 주제를 담은 콘셉트 호러 스토리가 담겨 있다. 특히 뮤직비디오와 비주얼을 통해 연극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앨범의 몰입도를 높인 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앨범 제목처럼 자신들이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성공으로 복수한다는 마음으로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한다. 상실과 자아를 이야기하며 자기 파괴적 에너지를 선보인 이 앨범은, 콘셉트 앨범이라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10대들에게 큰 공감감을 일으키며 마이 케미컬 로맨스를 대표적인 메이저 밴드로 성장시켰다.
상업적 성공과 재평가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는 음악적 호평과 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거두었다. ‘I’m Not Okay’와 ‘Helena’와 같은 My Chemical Romance(MCR)의 대표곡들을 탄생시키며 미국 내에서만 300만 장 이상을 판매한 MCR은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인정받아 명실상부 이모를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2025년 6월에는 리믹스와 리마스터링을 거쳐 음질을 개선한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 디럭스 에디션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발매 당시 빌보드 228위에 그쳤으나, 2025년 재발매되면서 높아진 My Chemical Romance의 위상에 힘입어 빌보드 206위까지 상승했다.
두 번째 앨범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로 큰 성공을 거둔 MCR이었지만 밴드는 큰 고민과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수많은 이모 밴드들이 그래왔듯 MCR 역시 수많은 악플과 비난을 받아왔고, 갑작스러운 성공에 밴드의 압박감이 더욱 심해졌고, 이 모든 것들이 반짝 인기로 끝나버릴까 하는 두려움도 쌓이게 되었다.
'더 블랙 퍼레이드'의 탄생

세 번째 앨범 제작 당시 이전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감정의 폭발을 재현하고자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 Part 2’라는 이름을 붙여 작업했지만, 새로운 곡을 작업할수록 콘셉트 앨범과 더블 앨범으로 방향이 틀어지면서 스케일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 MCR은 2006년 4월 새 앨범 녹음이 시작될 때 록 오페라를 선보이면서 펑크의 역사를 쓴 그린데이의 명반 'American Idiot' 프로듀서인 롭 카발로를 새 앨범 프로듀서 자리로 임명한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세 번째 앨범 ‘The Black Parade’는 파라마운트 맨션이라는 곳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제작되었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맨션에서 밴드 멤버들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으로 극도로 몰린 상태에서 작업에 매달린 끝에 탄생했다.

이 앨범은 통일된 테마와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콘셉트 앨범, 록 오페라를 선보인 앨범이다. 죽음을 앞둔 암 환자의 인생, 트라우마, 후회에 대한 이야기는 앨범 제목처럼 그의 죽음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본 군악대 퍼레이드, ‘The Black Parade’의 형태로 다가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이 록 오페라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저항의 메시지를 남긴다.
이런 서사를 담은 록 오페라 앨범답게 70년대 록과 글램 록, 고딕록에 영향을 받아 이모와 펑크를 기반으로 하드록, 프로그레시브 록 등 다양한 음악을 보여주며 가히 이모와 펑크계의 '서전트 페퍼스' 앨범이라고 불리며 이모 밴드에 대한 선입견을 깬 앨범으로 현재 평가받고 있다.
‘The Black Parade’는 이모 신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발매 당시에는 큰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2020년대 이모의 인기가 부활하면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이 앨범에 영향받은 팝과 힙합, 메탈, 영화 사운드트랙 등 수많은 분야에서 'The Black Parade'에 영향받은 부분이 드러나면서 현재는 록 명반으로 대접받고 있다.
판매량도 엄청났다. 빌보드 2위에 오르면서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400만 장 판매.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싱글 'Welcome to the Black Parade'는 빌보드 탑 텐에 진입한 것은 물론 UK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다.
사회적 논란과 오해

이렇게 'The Black Parade'로 음악적, 상업적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면서 밴드의 전성기를 맞이하나 싶었지만, 2008년 5월 MCR은 큰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이 음산한 이모 음악이 자살을 부추긴다며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자극적인 기사를 쓴 것이 원인이었다.
이 논란의 배경은 이러했다. 영국 거주, 당시 13세 소녀의 극단적 선택의 원인으로, 소녀의 MCR 팬심이 지목되었다. 데일리 메일은 MCR의 ‘The Black Parade’에 등장하는 가상 사후세계를 소녀가 진심으로 믿어 비극으로 이어졌으며, MCR의 음악이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이모 문화는 음산하고 위험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MCR은 이 소녀를 추모하며 오히려 자신들의 음악들이 반자살과 반폭력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항상 팬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다고 주장했고, 300여 명의 팬들이 데일리 메일에 시위를 벌였다.
MCR은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자기 파괴적인 감정의 가사를 선보였지만 결국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위로와 격려였다. 데일리 메일은 단지 겉모습만 보고 이 문제를 간과했으며, 소녀가 이전부터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다는 점도 간과했다. 그 소녀가 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지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젊은 세대의 서브컬처를 기괴하다며 악마화한 것이 이러한 사건을 초래했다.
네 번째 앨범과 새로운 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The Black Parade’ 이후, 멤버들은 고된 투어와 어두운 콘셉트 때문에 지쳐갔다. 멤버들은 프로듀서 브렌던 오브라이언을 영입하여 이전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더 간결하고 원초적인 록 앨범을 만들고자 했으나, 녹음을 마친 후 만족하지 못하여 앨범 발매를 전면 보류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결국 또다시 'The Black Parade'의 프로듀서 롭 카발로를 다시 데려와 이전과는 다른 밝은 분위기의 록 오페라 앨범을 하나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온 앨범이 바로 MCR의 네 번째 앨범 'Danger Days: The True Lives of the Fabulous Killjoys'이다.
‘Danger Days’는 2019년 가상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배경으로, 무법자 집단 킬조이스가 억압적인 대기업 베터 리빙 인더스트리즈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멤버들이 킬조이스의 캐릭터로 등장해 콘셉트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이 코믹북스러운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에 신디사이저와 전자음 등을 활용해 이전 'The Black Parade'의 어두운 분위기와는 달리 더 밝고 경쾌한 하이컬러 펑크 느낌 같은 음악을 들려주며, 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해체 선언

그러던 중 2013년 3월, 밴드의 전성기를 누리던 마이 케미컬 로맨스는 갑작스럽게 홈페이지에 해체를 선언한다. 제라드 웨이는 훗날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마스터플랜은 세 번째 앨범까지였다고 밝혔다.
그는 멤버들이 자신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여 명작으로 평가받는 ‘The Black Parade’를 완성한 후 해체하려 했으나, 가족 문제와 돈 문제, 밴드에 투자한 레이블, 그리고 마이 케미컬 로맨스에게 더 많은 것을 원했던 팬들의 존재로 인해 네 번째 앨범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제라드 이외의 다른 멤버들은 다른 밴드를 하며 솔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제라드 웨이는 과거 만화가를 지망했던 실력답게 만화계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어 그가 집필한 만화 '엄브렐라 아카데미'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외에 그는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집필한다거나 DC 코믹스의 영 애니멀 시리즈를 총괄 프로듀서로 진행하는 등 여러 만화 관련 프로젝트에 관여하여 성공한 덕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 11월, 마이 케미컬 로맨스가 재결합하자 과거 MCR을 좋아했던 팬들과 이모 열풍을 통해 MCR을 알게 된 현재 세대 모두가 열광했다. 그들은 2022년에 신곡을 발표했으며 현재 투어를 돌면서 다섯 번째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무리하며

2001년 그 충격적인 사건을 직접 보고 세상을 바꾸자는 마음으로 갑작스레 밴드를 결성하여 현재는 이모 음악을 뛰어넘어 이모라는 문화의 아이콘이 된 마이 케미컬 로맨스. 이들이 지금 다시 활동한다면 과연 어떤 음악을 선보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Created by 뮤직메카
교정 SENTENCIFY | 에디터 하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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