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정보/이슈•음악•문화/예술•연예

칸예 웨스트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 천재 뮤지션의 몰락사

뮤직메카2025.06.09
목차 📚

📌 먼치 POINT

  1. 순수한 출발과 비극적 전환
    칸예 웨스트는 초창기에는 순수하게 음악에 몰두하며 주목받는 래퍼로 성장했으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개인적 시련 이후 멘탈 변화와 함께 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2. 논란과 기행의 연속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언, MTV VMA 테일러 스위프트 사건, 트럼프 지지, 노예제 발언, 대통령 출마 등 사회적·정치적 논란이 이어졌고, 반유대주의와 히틀러 옹호 발언으로 글로벌 비판을 받았다.

  3. 현재 상황과 회복 가능성
    최근 칸예는 반성의 메시지를 내고 논란곡을 수정했으나, 잦은 태도 변화로 신뢰를 얻기 어렵고 회복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음악적 재기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칸예 웨스트의 내한 공연이 결국 취소되었습니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그간의 칸예답게 황당무계한 행동으로 내한을 취소했다고 합니다. 요즘 칸예 웨스트의 행보를 보면 실드를 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끝까지 가버린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칸예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동안 칸예가 벌였던 논란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순수했던 데뷔 초창기

넷플릭스에 있는 칸예 웨스트의 데뷔 초창기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jeen-yuhs: A Kanye Trilogy」를 보신 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지금의 칸예와는 다르게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어 노력하는 그 순수한 칸예의 모습을 말입니다. 칸예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흑인 래퍼들처럼 빈민가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오히려 중산층 흑인 가정에서 대학까지 입학할 정도로 귀하게 자랐습니다.

오로지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대학까지 자퇴했고, 칸예 웨스트는 프로듀서로서 래퍼로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제이지의 레이블 락카펠라와 계약한 후 2004년 『The College Dropout』, 2005년 『Late Registration』이 연달아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큰 호평을 받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이때 칸예는 다른 거리 출신 래퍼들과는 달리 별 사고를 치지도 않았고, 오히려 기존 힙합 아티스트 이미지를 깨뜨리며 혜성같이 나타난 그저 착실하게 음악 잘하는 청년이었습니다.


논란 1: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언

두 번째 앨범 『Late Registration』이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2005년 9월, 칸예는 처음으로 구설수에 오르게 됩니다. 그것도 생방송 도중 말입니다. 2005년 8월 말에 사상 최악으로 불리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일이 있었는데, 특히 재즈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뉴올린스의 80%가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이런 자연재난에 미숙한 대응을 보여서 더 문제였습니다.

2005년 9월 2일 칸예 웨스트가 NBC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들을 위한 자선 기금 프로그램에 생방송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영화 「오스틴 파워」로 유명한 배우 마이크 마이어스와 함께 출연했는데, 뜬금없이 흑인과 백인들을 이중적으로 대하는 인종차별적 보도를 비판하며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이 흑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이야기에 마이크 마이어스는 당황했고, 카메라도 다른 곳으로 돌려졌습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회고하며 이때 칸예가 마치 자신을 인종차별자라고 부른 것에 대해 상당히 유감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후에 칸예는 그때 자신이 매우 감정적이었고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이 발언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이 발언은 칸예 웨스트의 첫 사회적, 정치적 논란 발언의 시작이었습니다.


비극의 시작

그 뒤 칸예는 2007년 9월 『Graduation』으로 전자음악과 힙합의 조합을 시도하며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며 승승장구를 이어갑니다. 대학 중퇴, 늦은 입학, 졸업까지 대학 3부작을 화려하게 마무리하게 되면서 이때의 칸예 웨스트는 막을 자가 아무도 없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칸예에게 비극이 찾아옵니다. 『Graduation』 발매 두 달 후 그의 어머니 돈다 웨스트가 지방 흡입술, 유방 축소술 등 성형수술을 받았는데, 의료 과실 문제가 있었던 의사에게 잘못 수술을 받아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칸예 웨스트와 어머니 돈다 웨스트는 아주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아무도 그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았을 때 그의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칸예를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습니다. 후에 칸예는 아예 『Donda』라는 제목의 앨범을 만들어 자신의 어머니에게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808s & Heartbreak』와 멘탈의 변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칸예 웨스트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게 되면서 그의 멘탈까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때부터 여러 문제적 발언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칸예 웨스트의 시련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2002년부터 사귀다가 2006년에 약혼한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칸예 웨스트에게 닥쳐온 여러 가지 슬픔을 담아낸 앨범이 바로 네 번째 앨범 『808s & Heartbreak』였습니다. 지금은 얼터너티브 R&B와 싱잉 랩 등에 큰 영향을 준 칸예의 명반 중 하나이지만 발매 당시에는 그렇게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상당히 비판을 받던 오토튠을 과하게 사용해 래퍼가 랩이 아니라 노래를 한다면서 상당히 혹평을 받았습니다.


논란 2: MTV VMA 테일러 스위프트 사건

이렇게 멘탈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평가가 좋지 않았던 칸예 웨스트는 2009년 9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본격적인 나락으로 가게 되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됩니다.
이날 테일러 스위프트는 최우수 여성 비디오상을 수상하면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칸예가 테일러의 마이크를 가로채 ‘비욘세의 뮤직비디오가 최고’라며 무례를 범한 것이었습니다. 칸예 웨스트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까지 그를 비판하게 만들었고, 미국 전역에서 큰 비난을 받게 됩니다.

이후 칸예는 이 행동에 사과하며 테일러와 콜라보를 하려고 했으나 결국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칸예와 테일러의 관계는 7년 뒤에 다시 악화됩니다. 바로 「Famous」라는 곡을 공개하고 나서였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해 모욕적으로 쓴 가사에 칸예는 테일러가 동의했다며 해명했지만, 테일러는 전혀 동의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당시 칸예의 아내였던 킴 카다시안은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는데, 이 당시에는 칸예의 말이 맞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대중들에게 거짓말쟁이 뱀이라며 조롱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20년 칸예 폰이 해킹당하면서 그때의 테일러와의 통화 전문이 유출되면서 여론이 반전됩니다. 알고 보니 칸예와 킴이 이전에 공개했던 통화 내용은 편집한 것으로 밝혀졌고, 테일러가 했던 말이 모두 사실로 밝혀져 칸예와 킴 부부가 큰 비판을 받게 됩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창작 활동

어머니의 사망, 『808s & Heartbreak』의 혹평, 멘탈 문제 그리고 MTV 난입 사건까지 칸예 웨스트는 미국 전역에서 취소를 당하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칸예는 이에 굴하지 않고 멘탈이 심하게 망가질 정도로 극단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이렇게 극단으로 몰아붙여서 나온 앨범들이 힙합 음악 역사의 걸작들인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부터 시작해 『Yeezus』, 『The Life of Pablo』 등 명반을 줄줄이 만들어냈고, 여러 다양한 앨범과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논란 3: 정신 건강 문제와 정치적 논란

하지만 칸예 웨스트의 음악이 더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의 언행과 기행은 갈수록 심해지게 됩니다. 이 기행은 2016년 자폐증을 앓고 나서부터 심해졌습니다. 자폐증은 상호작용, 의사소통, 학습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학적 및 발달장애라고 합니다. 이 자폐증은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원래 칸예가 2018년에 발매된 『Ye』 앨범을 통해 자신의 정신 건강을 이야기하며 조증과 우울증이 오고가는 양극성 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하지만 나중에 밝혀지기로는 이것은 오진이었다고 합니다.
칸예 웨스트는 이 정신적 문제 때문에 충동적으로 논란의 발언과 행동을 일삼았고,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신질환을 방패 삼아 문제적 발언에 책임을 피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는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면서 논란이었습니다. 셀럽이 한 정치인을 지지하는 게 그렇게 논란이냐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흑인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논란이었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 후보는 흑인들을 범죄자로 프레임화하고,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애매한 입장을 내놓으며 진보 진영에서 상당히 비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트럼프가 미국 내 인종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며 트럼프에 대해 상당히 반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칸예가 '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를 쓰고 백인 보수 정치인 트럼프를 직접 만나 "그는 내 형제다"라고 말하며 지지하는 것에 대해 진보 성향을 지닌 수많은 흑인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논란 4: 노예제도 발언과 대선 출마

게다가 2018년 5월 TMZ와의 생방송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흑인들이 노예 생활을 했던 것은 흑인들의 선택이었다. 흑인들이 정신적으로 아직도 노예 상태에 있다"는 발언을 쏟아냅니다. 강제적으로 노예 생활을 해왔던 흑인 역사를 무시한 이 발언은 수많은 흑인들에게 큰 공분을 샀습니다.

칸예는 흑인의 의식 해방, 즉 시스템이 주입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고 해명했지만, 표현 방식이 너무 왜곡되고 과격해서 설득력을 잃었고 수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칸예의 취지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이제 새로운 형태의 노예 제도로 살고 있다는 흑인들을 이야기했고, 흑인들의 정치 성향에서 "보수는 무조건 나쁘고 진보 성향의 민주당을 지지하는 게 당연하다"라는 인식을 타파하려는 것이라면서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행은 언행에서 그치지 않고 이제 직접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2020년 7월에는 아예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한 것입니다. 심지어 '버스데이 파티(생일 파티)'라는 정당을 창당해 정말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됩니다. 보수주의와 개신교적 가치에 기반을 둔 공약을 내세웠는데, 유세 도중 방탄 조끼를 입고 낙태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폭풍 오열을 하거나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이 노예 해방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또 논란이었습니다.

칸예의 대선 출마는 ‘억지다’, ‘퍼포먼스다’, ‘진심이다’ 등의 여러 해석을 낳으며 끝내 6만 표를 받으며 당연히 낙선했습니다.
이후 칸예는 BLM(Black Lives Matter)에 맞서 ‘White Lives Matter’가 적힌 티셔츠를 공개한다거나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극우단체 KKK 스타일의 복장을 선보이는 등 수많은 기행을 이어갑니다.


논란 5: 반유대주의와 극단적 행보

그리고 2022년부터 칸예 웨스트는 선을 넘을 때까지 넘어버려 이제는 쉴드조차 칠 수 없는 나락으로 가게 됩니다. 갑자기 트위터에 유대인들에게 "데스콘 3을 실행할 것(I’m going death con 3)"(‘death con 3’는 미국 군사 용어 DEFCON에서 유래한 표현)이라는 반유대주의적 트윗을 한 것으로 시작해, 유대인들이 전 세계의 언론과 금융, 음악, 산업, 미디어를 쥐락펴락한다는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하고, 유대인들이 자신을 통제하려고 한다는 언행을 마구 쏟아냅니다. 이 때문에 칸예와 파트너십이 있었던 아디다스, 발렌시아가, 갭 등 주요 기업들과의 협업과 스폰서가 줄줄이 끊기기도 했습니다.

사실 반유대주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서구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종교, 기독교의 신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며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유대인의 선민사상, 타 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 상업과 고리대금업에 종사했던 유대인의 역사 등 여러 가지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유대인은 돈만 밝히는 민족이라는 선입견이 생겼고, 서구권에는 긴 시간 동안 유대인에게 적개심이 생기게 됩니다.

이 때문에 생긴 일이 바로 독일의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난 홀로코스트였습니다. 히틀러는 유독 유대인에게 상당한 반감을 가졌고 약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게 됩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건립되면서 반유대주의가 암암리에 더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칸예도 이런 음모론을 믿으며 반유대주의적 발언을 계속 이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논란 6: 히틀러 옹호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다

하지만 칸예는 2022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2022년 12월 극우 음모론자 방송에 출연해 히틀러와 나치를 옹호한 것입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이 나치를 과도하게 비난한다고 주장했고, 홀로코스트조차 부정하는 발언까지 이어갑니다.

히틀러와 나치는 역대급으로 반인륜적인 범죄를 자행해 서구권에서는 절대 언급조차 꺼려하는 존재인데, 칸예는 오히려 이를 지지하며 큰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그 뒤 2024년 12월 히브리어로 유대인 커뮤니티에 사과문을 게시하기는 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습니다.
심지어 2025년에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가 그려진 티셔츠를 판매한다거나 「Heil Hitler」라는 노래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 올해 발매된 앨범 『Bully』와 유출된 음원 「Cuck」에서도 반유대주의 성향과 히틀러와 나치 옹호를 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 논란에 논란을 이어갑니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와 미래에 대한 우려

그리고 2025년 5월 22일 갑자기 칸예는 이제 반유대주의에 지쳤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여기 지구는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갑자기 태도를 급변하게 됩니다. 칸예는 아이들과 영상 통화를 한 뒤 이제는 세상을 구하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그 뒤 얼마 전에 발표한 싱글 「WW3」의 문제가 된 가사를 무음 처리하고, 「Heil Hitler」는 가사를 삭제하고 인스트루멘털 버전으로 재발매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칸예의 행보를 되짚어보며 너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기에 아직 그를 믿기에는 섣부릅니다. 그가 또 언제 폭주해 또 어떤 발언을 쏟아낼지 모르는 일입니다.

끝까지 가버린 칸예 웨스트는 과연 회생 방안이 있을까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너무 많은 영역들을 건드려 흑인들뿐만 아니라 서구권에서는 모두 칸예를 외면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제는 핸드폰을 압수한다거나 현대 문명에서 벗어나는 삶을 산다거나 음모론에 빠져 반대를 위한 반대를 계속할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조금만 참고 자신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인정부터 하고 치료를 받는 게 우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워하던 혁신적인 음악을 들려주던 칸예 웨스트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명반들을 계속 만들었으면 합니다.



Created by 뮤직메카 @musicmeccatv
교정 SENTENCIFY/ 편집자 이유진

주식회사 북엔드
대표: 최현수 | 사업자 등록번호: 602-86-03073
주소: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155번길 4,
대전 스타트업파크 S1 3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