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유명한 책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자들을 위하여
📌 먼치 POINT
듀나의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 형태: 팟캐스트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교양서
- 내용: 장르문학, 창작, 감상에 대한 듀나의 생각
- 읽는 방식: 깊은 이해보다는 가볍게 듣는 팟캐스트처럼 접근
- 추천 이유: 책이 불편하거나 취향이 아니어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경험
- 핵심 메시지: "낯선 책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성장의 기회다"
안 유명한 책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도서 추천

오늘부터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시리즈의 이름은 '알고리즘 탈 일 없는 책 소개'입니다. 유명하지도 않고 신간도 아니라서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겠지만, 자본주의의 노예처럼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제가 덜 행복할 것 같아서 이런 책들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덜 유명한 책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앞으로도 이 시리즈가 올라올 때마다 기분 좋게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듀나의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첫 번째 책은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입니다. 매우 우연히 읽게 된 책입니다. 온라인 중고 서점으로 책을 고르다가 국내 SF 작가 추천 리스트에는 빠지지 않는 듀나 작가님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배송비를 맞추는 겸 넣어보았습니다. 원래 글을 잘 쓰시는 분이면 소설이 아니어도 다른 글도 잘 쓰시겠다는 생각으로 소설이 아닌 책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은 정확한 장르 이름이 있지는 않지만, 팟캐스트를 도서로 만든 형태의 책입니다. 에세이면 에세이고 교양서면 교양서지만, 어떤 주제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가볍게 들어보는 용도로 읽는 책입니다. 학문적인 성취나 깊은 이해를 기대하면서 읽는 책은 아닙니다. 팟캐스트를 듣는 느낌으로 접근하면 될 것 같습니다.
책의 소재는 장르를 둘러싼 스토리, 예술의 창작과 향유에 대한 저자의 의견입니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보면 아예 장르 소설이라고 SF 소설, 추리 소설을 모아놓고, 요즘에는 웹소설이나 웹툰이 따로 책으로 만들어진 형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재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로 이 책을 읽을지 말지를 가려내기는 쉽습니다.
독특한 문체와 매력

이 책의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은 문체입니다. 요즘 에세이 장르에서는 온화하고 무해하고 다정하고 달콤한 글이 인기가 많은데, 이 책은 그것과 정반대입니다. 맞는 말을 해도 묘하게 기분 나쁘게 긁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근거가 아예 없는 비난도 아닌 것 같고 말도 그냥 까랑까랑하고 시원하고 깔끔해서 묘하게 계속 읽게 되는 스타일입니다.
책이 2019년에 나왔는데, 아마 요즘 이런 화법으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면 같은 말을 해도 "꼭 그런 식으로 말을 하냐, 듣기 싫다"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는 느낌입니다. 저는 그래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몇 군데 과격한 부분도 있긴 했지만, 상스럽지 않으면서 시니컬하게 말 잘하는 분들 특유의 재미가 잘 살아 있었습니다.
최근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콘텐츠를 많이 봐서 그런지, 이런 톡 쏘는 매력이 낯설고 새로워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장르물이란 무엇인가

첫 시작은 '장르물이란 무엇인가'라는 테마로 시작합니다. 순문학과 장르 문학, 그리고 웹소설까지 글로 작성되어 소비되는 것들을 어떻게 분류할지가 참 애매합니다. 여기에서도 장르가 왜 생겨났고 그것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순문학과 장르 문학을 왜 굳이 나눠야 하고, 그 경계와 기준은 또 무엇이며, 거기서 또 "네가 낫네 내가 낫네" 하는 것이 좀 우습지 않나라는 생각을 저도 조금은 가지고 있어서 재미있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런 표현을 쓰면서도 좀 곤란하고 스스로 좀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많이 안 읽은 상태에서 유튜브를 시작했기 때문에 "추리 소설이다", "문학동네에서 나오는 소설이다" 이런 식으로 매우 쉽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책을 읽고 사람들이 남기는 서평을 읽고 또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 잘 쓰인 해설도 읽고 그러다 보니까 여러 가지 용어나 구분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현재 통용되는 말로 언급을 해야 다수가 한 번에 알아듣기에 문제가 없어서 저도 그냥 "순문학이에요", "장르 문학이에요" 이런 식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가장 불편한 점은 독자로서 책을 고르는 데 편리하게 구분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계급을 유지하고 싶어서 혹은 자신들만의 문화가 통용되는 한정된 경계를 갖고 싶어서 이 장르라는 것을 굳이 이름 붙이고 "이 장르의 3대 명작은 무엇이고 이런 조건이 갖춰져야 하며 이것은 경계를 벗어났네" 하는 논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개인적 성찰과 깨달음

장르 문학 말고도 다른 이야기도 많이 등장하는데, 읽으면서 "나도 이런 생각 좀 해봤어야 되는데" 하고 내 생각을 돌이켜보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99쪽에 보면 "저는 여자 주인공에 감정 이입을 못해요"라고 아주 태평스럽게 말하는 남자들을 의외로 많이 만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죠. 하지만 자신의 무능력과 게으름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면 그들이 뭉쳐 모인 영토가 의외로 넓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매우 찔렸습니다. 저도 이런 생각과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타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 어떠한 배경을 하고 있는 책이 나오면 "이런 것은 공감을 잘 못하겠어요"라고 지난 영상들에서도 쉽게 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이 몇 개 떠오르더라서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누구를 제대로 이해해보려고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냥 나랑 다르니까 "전 공감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모르겠어요" 이러고 그냥 넘어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제가 엄청난 성인처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볼 수는 없겠지만, 편가르기 하고 쉽게 생각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비판해왔던 단순하게 분노하는 사람들과 저랑 다를 게 별반 없는 것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와 연결되는 통찰

저에게 또 하나 깊은 메시지를 줬던 부분이 171쪽에 나오는데, "독자나 이야기꾼이 추구하는 욕망과 쾌락이 너무 쉽게 제공되면 그건 포르노가 됩니다"라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매우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최근에 본 쇼츠 중에 몰래카메라처럼 찍어서 반응을 보는 것이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어떤 학생이 어르신께 반말을 하고 매우 못되게 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야 너 똑바로 못해" 이러면서 엄청 화를 내고, 이 반응을 모아서 쇼츠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런 것을 분노 포르노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알고리즘을 타면서 더 빠르게 확산되는 이런 분노 포르노 콘텐츠들이 많아지면 사람들의 가치관 형성이나 인간관계에서의 결정, 그리고 무심코 내뱉는 말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런 다양한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킬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에 계속해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과정과 맥락을 건너뛴 채 성공한 결과 상태만을 바라면서 환상주의에 빠지는 게 요즘 사람들이라는 것, 과정과 맥락을 건너뛰고 사람을 이해해버리니까 사람을 매우 쉽게 평가하고 낙인 찍고 손절하고 나락 보내는 것도 요즘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현대화 산업화 성장 과정에서 너무 빠르게 효율만을 추구하다 보니까 한국 사회의 문화에는 어떤 것이 결여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고 대한민국의 20세기를 해석하고 받아들였으면서도, 21세기에도 욕망과 쾌락이 단숨에 제공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빠르게 효율만을 추구하면서 또다시 병든 면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습니다.
편독을 벗어나는 독서의 가치

다시 책으로 돌아와 보자면, "이렇게 피곤하게 굴어", "이렇게 삐딱하게 말해" 이런 인상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장르 문학과 비주류 문화에 대한 약간의 이해 정도가 있으셔야 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읽어왔던 책이 주로 실용서 위주나 자기계발서 혹은 로맨스 같은 웹소설을 좋아하셨거나, 띠지에 "한국 문학의 어쩌고저쩌고"라고 수식된 소설만 읽어오셨던 분들이라면 20페이지 30페이지도 읽기 전에 사투리를 쓰는 지방에 전학 온 서울 출신의 학생이 된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취향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책을 읽고 시간을 들여서 소개하느냐고 물으신다면, 43쪽을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로지 위대한 문학 작품들만 읽는 것은 위인들로만 구성된 역사책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실제 문학 세계를 반영하지 않아요. 실제 세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요."
스탈린도 히틀러도 없고 선하게 헌신하는 사람들만 나오는 역사책을 보면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이해한 게 맞을까요?
맺으며

요즘 들어서 편독을 벗어나고 싶다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일단은 한번 나랑 거리가 먼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했다가 10장만 읽고 반납을 하더라도 가끔씩 그런 대출을 한 번씩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꼭 이 책이 아니어도 되고, 제가 말씀드렸던 부분에 모두 동의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소개했던 책이 "아 이것 왜 인기 없는지 알겠다" 이러고 바로 덮어버리셔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낯선 것을 접하는 경험 자체는 여러분들께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reated by 해죽이북카페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에디터 최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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