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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 록 아이콘의 디스전, 건즈 앤 로지스 ‘액슬 로즈’ 🆚 너바나 ‘커트 코베인’

뮤직메카2025.04.26
목차 📚

📌 먼치 POINT

  1. 시대별 록의 아이콘과 가치관의 충돌
    엑슬 로즈와 커트 코베인은 각각 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록스타로, 건즈 앤 로지스와 너바나를 이끌며 각 시대의 음악 흐름을 상징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불우한 성장 배경과 반항적인 음악 정신을 공유했지만, 엑슬은 마초적이고 상업적인 주류 록을, 커트는 반상업적이고 평등·포용의 가치를 추구한 아웃사이더로 정반대의 가치관을 보였습니다.

  2. 록 음악 세대 교체와 두 밴드의 직접적 갈등
    너바나가 등장하면서 록 음악의 중심이 글램메탈에서 얼터너티브 록으로 옮겨갔고, 이는 두 밴드와 프론트맨의 강한 대립으로 드러났습니다. 엑슬은 너바나와 협업을 제안했지만 커트 코베인은 이를 완강히 거절했고, MTV 어워드에서의 신경전 등 공개적인 갈등과 논란이 이어지며 록계의 세대 교체 상징처럼 남았습니다.

  3. 시간이 흘러 찾아온 화해와 상징적 유산
    커트 코베인 사망 전, 그리고 이후 두 밴드 멤버들 간의 교류와 사과, 협력의 순간들이 이어지며 긴장이 누그러졌고, 데이브 그롤이 엑슬에게 기타 왕좌를 빌려주는 등 우정의 상징적 장면이 만들어졌습니다. 두 밴드는 서로 다름에도 록 역사에 깊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상징하는 두 록 아이콘

서로 다른 시대를 상징하는 두 록 스타 액슬 로즈와 커트 코베인. 이 둘은 음악 스타일과 추구하는 가치관은 전혀 다르지만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둘 다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록음악에 큰 영향을 받으면서 밴드 생활을 시작했죠. 건즈 앤 로지스와 너바나의 음악도 마찬가지로, 두 밴드 모두 펑크록에 큰 영향을 받았고, 록 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80년대 록의 황제: 건즈 앤 로지스

80년대는 글램메탈과 스래시 메탈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이 시대의 록 음악씬의 주인공은 인기나 위상으로 봤을 때 단연코 건즈 앤 로지스였습니다. 건즈 앤 로지스는 1987년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으로 데뷔해 큰 성공을 거두며 80년대 후반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자유분방한 마초 💥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밴드라고 불리우며 여러 가지 사고를 쳤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자유분방한 마초적 이미지를 내세우며 큰 인기를 끌었어요.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하며 화려한 록스타가 무엇인지 보여준 밴드였죠. 액슬 로즈는 까칠하고 자신감 있는 록스타의 이미지를 선보였고, 압도적인 무대 퍼포먼스로 건즈 앤 로지스를 이끌어가고 있었으며, 80년대의 록스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90년대 새로운 바람: 너바나의 등장

컬리지 락의 등장 📻

언더그라운드 인디씬에는 이런 화려한 록스타에 반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움직임은 바로 컬리지 락이었어요. MTV에서 나오는 주류 팝 음악과 주류 록 음악을 거부하는 음악들, 대학가 라디오에서는 포스트 펑크와 쟁글팝 등의 음악들이 주로 나오면서 자신들만의 음악씬을 형성하게 됐죠.

커트 코베인은 아리에에, 소닉 유스, 픽시스 등의 당시 컬리지 록 밴드들의 음악을 들으며 인디 레이블 서브 팝과 계약해 너바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0년 너바나는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하게 되고, 80년대 인디씬에서 영향을 받은 반주류적인 음악들을 자산 삼아 자신들의 음악을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하게 됩니다.

『Nevermind』의 등장 👼🏻

당시 글램메탈과 LA 메탈 음악들은 화려한 기교가 난무하는 연주, 록스타의 방탕한 모습, 꼭 하나 있는 파워 발라드 등의 진부함에 대중들이 한창 실증을 내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1991년 9월 너바나의 두 번째 앨범 『Nevermind』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록 음악씬의 판도가 바뀌게 됩니다.

70년대 펑크록에 영향받은 반주류적인 마인드, 80년대 컬리지 록에 영향받은 인디 마인드로 가득 찬 너바나는 마초적이고 상업적인 록 음악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면서 이전의 글램 메탈, LA 메탈과는 방향성이 다른 새로운 록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이렇게 너바나가 선보인 음악들은 '록의 대안' 즉,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불리면서 90년대 새로운 흐름을 가져왔죠.


세대 교체의 충돌

너바나가 주류 시장의 대세가 되면서 80년대 유행했던 글램메탈과 LA 메탈 밴드들은 하나둘씩 사라져갔고, 대신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이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건즈 앤 로지스는 이 새로운 흐름 속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밴드였습니다. 『Nevermind』가 세상에 나오면서 새로운 물결이 칠 당시, 같은 해 더블 앨범 『Use Your Illusion』을 내면서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었죠.


일방적 구애와 거절: 액슬과 커트의 갈등 시작

액슬 로즈도 너바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사실 액슬은 너바나의 팬이었습니다. 「Don't Cry」 뮤직비디오에서는 너바나 로고가 있는 모자를 쓰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반면 커트 코베인은 액슬 로즈의 일방적인 구애에 선을 칼같이 그어버렸죠.

"우리는 건즈 앤 로지스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런 전형적인 밴드가 아니에요. 진짜 반항은 건즈 앤 로지스 같은 사람들에게 맞서는 거죠."

액슬은 메탈리카와 함께하는 대형 투어에 너바나를 초청하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액슬은 커트에게 끊임없이 전화하면서까지 투어를 같이 하자고 매달리기도 했죠. 하지만 커트 코베인은 주류 밴드의 대표 주자였던 건즈 앤 로지스의 프런트맨 액슬 로즈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이 둘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걔네는 우리와 함께 투어를 하는 것보다 집에 앉아서 아내와 헤로인하고 싶어 한다"


가치관의 충돌: 마초 vs 아웃사이더

마초, 액슬 👨🏻‍🎤

록 음악을 대표하는 이 둘이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서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건 사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액슬 로즈는 전성기 시절 사고를 많이 치며 터프가이 마초적인 이미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One in a Million」이라는 노래에서는 흑인과 동성애자에게 인종차별 혐오를 드러내며 논란이 되기도 했죠.

아웃사이더, 커트 🙅🏼‍♂️

반면 커트 코베인은 동성애 차별, 인종 차별 등을 반대하며 LGBTQ, 페미니스트 등 평등과 포용성의 가치를 내세우며 아웃사이더의 감성으로 불안한 청춘들을 대표했습니다. 액슬은 이런 가치를 개의치 않아 했지만, 커트 코베인은 자신과 상반된 가치를 가진 액슬과 도저히 친하게 지낼 수가 없었던 것이죠.

액슬 로즈의 일방적인 구애에 커트 코베인이 건즈 앤 로지스를 대놓고 적대시하고 디스하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액슬은 결국 폭발하게 되고 커트 코베인을 향해 날을 세워 공격했습니다.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액슬답게 커트의 가족까지 싸잡아 공격했어요.

"나한테 얼터너티브란 커트 코베인이나 너바나 같은 놈들이야. 걔는 그냥 마약쟁이에 마약쟁이 아내를 둔 놈이라고."

커트 코베인 부부의 마약 논란 💊

커트 코베인은 밴드 홀의 프론트우먼 커트니 러브와 결혼하면서 딸을 낳게 되었는데, 두 사람 모두 심각하게 마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향으로 딸이 선천적 결함이 있다는 루머가 한동안 퍼지기도 했죠. 액슬은 이 소문을 언급하며 딸이 진짜 그렇다면 둘 다 감옥에 가야 한다고 독설을 날렸어요. 이뿐만 아니라 너바나에 의해 불어닥쳤던 '얼터너티브'라는 말을 조롱하며 커트 코베인을 잘난 척하는 엘리트주의자라고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MTV 어워드에서의 폭발적 대립

이렇게 날선 신경전을 펼쳤던 건즈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이 신경전은 1992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폭발하게 됩니다.

액슬은 여자친구이자 모델 스테파니 시모어와 함께 백스테이지에서 커트 코베인과 커트니 러브와 마주쳤습니다. 이 시상식에 딸을 데려온 커트니 러브가 액슬에게 먼저 도발합니다. "프랜시스의 대부가 되어 줄래?"라고 빈정거리듯 말한 거죠. 액슬은 이 도발에 화를 내며 커트에게 "니 마누라 입 좀 닥치게 해, 아니면 널 땅바닥에 처박아버릴 거야"라고 소리쳤고, 커트는 액슬에게 맞을까 봐 겁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커트니에게 장난으로 "조용히 해, 나 때문에"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고 하죠.

액슬과 커트 주변인의 대립 💢

스테파니 시모어와 커트니 러브의 기싸움도 있었습니다. 스테파니는 커트니에게 "당신 모델이에요?"라고 외모를 비꼬듯 묻자 커트니는 "아니요. 당신은 뇌 의과 의사인가요?"라고 외모와 상관없는 직업으로 맞받아쳤죠.
게다가 이 두 프론트맨의 갈등뿐만 아니라 건즈 앤 로지스의 베이시스트 더프 맥케이건은 너바나가 건즈 앤 로지스 뒷담화를 하고 다닌다는 말에 너바나 베이시스트 크리스 노보셀릭에게 달려들기도 했습니다.

이날 대립의 정점은 너바나의 공연이었습니다. 공연 이후 데이브 그롤은 액슬 로즈를 약 올리는 마냥 "하이 액슬! 액슬!"이라고 외쳐댔고, 커트 코베인은 무대가 끝나고 액슬 로즈의 키보드에 몰래 침을 뱉었다고 해요. 이 직접적인 충돌 이후 커트 코베인은 LGBT 매체 The Advocate와의 인터뷰에서 더 강도 높게 비난하며 선을 더 철저히 그어버렸습니다.

"액슬은 젠더 차별주의자고 인종차별주의자고, 동성애 혐오자야. 그런 사람 편에 설 거면 우리 편에 있을 수 없어. 게다가 걔네는 제대로 된 음악도 못 만들잖아."


시간이 지나 찾아온 화해의 순간들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인 1994년 3월, 같은 시애틀 출신이었던 커트 코베인과 더프 맥케이건이 우연히 같은 비행기 옆자리에 앉게 됩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이 둘은 서로 간의 공통 주제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고, 마치 두 밴드 간에 앙금이 풀린 양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1994년 4월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떠난 후, 친구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던 데이브 그롤에게 가장 먼저 연락이 온 사람이 건즈 앤 로지스의 드러머 맷 소럼이었습니다. 라이벌을 넘어 개인적인 감정까지 있었던 건즈 앤 로지스와 너바나의 관계는 시간이 흘러 점차 누그러지기 시작했죠.
2010년 2월 더프 맥케이건은 92년 MTV 뮤직 어워드에서 크리스 노보셀릭에게 무작정 달려들었던 일에 대해 사과했고, 같은 해 4월 메탈 잡지 리볼버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에서 슬래시와 데이브 그롤은 모토헤드를 헌정하는 무대에 같이 서게 됩니다.

완전한 해소 🕊️

2016년에는 더 큰 화해의 제스처가 있었습니다. 건즈 앤 로지스 재결합 투어 중 액슬 로즈가 발목뼈가 부러지게 되어 역사적인 재결합 투어가 중단될 위기가 있었지만, 너바나의 드러머이자 현 푸 파이터스의 프론트맨 데이브 그롤이 도움을 주었어요.
2015년 데이브 그롤도 푸 파이터스 공연 도중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는데, 이때 '왕좌의 게임'을 연상시키는 기타 왕좌를 제작해 투어를 이어갔습니다. 액슬 로즈도 이와 똑같은 일을 당하자 데이브 그롤은 이때 제작했던 기타 왕좌를 액슬에게 기꺼이 빌려주었고, 이는 수십 년간 이어졌던 두 밴드 사이의 긴장감이 완벽히 풀어졌음을 보여주는 일이어요.


물과 기름 같았던 두 록 아이콘의 유산

액슬 로즈와 커트 코베인, 건즈 앤 로지스와 너바나는 록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맞부딪힌 상징적인 대립이었습니다. 액슬 로즈와 커트 코베인, 이들의 삶의 가치관이 너무 달라 아쉽게도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죠.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무의미하지만, 커트 코베인이 닫혀 있는 마음을 열고 액슬 로즈의 구애를 받아줬더라면, 액슬 로즈의 성격이 좀만 더 순했더라면, 그래서 이 둘이 더 사이좋게 지냈더라면 록 역사의 상징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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