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2025) 리뷰 및 해석 : 우리는 봉준호가 멈춘 곳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요약
영화 『미키 17』은 자본주의, 생명 정치, 식민주의, 존재론적 자아 정체성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를 교차하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묻는 작품이다. 반복적으로 죽고 살아나는 복제 인간 미키를 통해 죽음과 노동, 죄의식과 애도, 고유성과 통일성의 딜레마를 그리며, 연출된 정치 권력과 소비 사회의 모순도 함께 드러낸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질문들에 끝까지 책임지기보다는, 결정적 순간마다 질문 자체를 봉인하거나 회피하는 선택을 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하나의 완결된 해답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서 다시 질문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의 지점으로 기능한다.
1. 자본주의와 생명 정치
‘미키 17’은 깊이보다 넓이를 택한 영화다. 중심 주제를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는 여러 사유의 조각들을 던져준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인간 고통의 상품화다. 영화는 노동력 없는 인간이 백신 개발을 위한 실험용으로 반복적으로 죽고 살아나는 세계를 그린다.
프린터는 그런 인간 상품화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다. 하지만 이 비판은 단순한 자본주의 비판에서 그치지 않는다.
푸코가 말한 생명 정치, 그리고 은뱀베가 정의한 시신 정치가 이 세계의 권력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더 적절하다.
식량 배급이나 성관계 제한은 권력이 인구를 어떻게 통치하는지를 드러낸다.
‘미키 17’은 생명을 관리하고, 죽음을 배분하는 정치의 방식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2. 죽음을 통해 살아남는 존재
케네스의 연설과 미키의 성행위 장면을 교차 편집한 시퀀스는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이는 규율하려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일 수 있다.
영화는 “미키마우스”를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 미키를 반복적으로 죽여가며 실험한다.
이는 곧 “죽여도 되는 생명”과 “필요한 생명”을 나누는 시신 정치의 작동 방식이다.
케네스가 제니퍼 대신 미키가 죽었어야 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다르게 책정하는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키는 무가치한 생명으로 취급되지만 바로 그 죽음 덕분에 사회에 기여하고, 생명 정치 체제 속에서 노동자로서 다시 가치를 부여받는다.
이처럼 죽음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 그것이 ‘미키’라는 인물의 운명이다.
3. 소스, 피, 식민주의
영화에서 일파가 집착하는 '소스'는 단순한 향신료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주의를 연상시키는 상징이다.
대항해 시대 제국들은 향신료를 찾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했고, 영화 속 백인 정치인 일파 역시 소스를 통해 권력을 유지한다.
미키의 상상 속에서 일파는 "소스 맛을 먼저 보고 재료는 나중에 묻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스는 크리퍼의 꼬리를 자르고 가공한 결과물이다.
개발의 폭력을 은폐하고 결과만 소비하는 현재의 소비 문화를 은유하는 대목이다.
흥미롭게도, 소스는 피처럼 붉다. 피는 생명이자 고통의 상징이며, 영화는 피를 흘리는 이들을 ‘피착취자’로 배치한다.
결국 미키가 소스를 거부하는 것은, 그 피를 소비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저항이다.
4. 연출된 권력과 이미지 정치
‘미키 17’에서 가장 능숙한 정치인은 케네스다. 그는 독재자이면서도, 마치 연예인처럼 자신을 연출한다.
언제나 조명과 카메라 앞에서 움직이며 꾸며낸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태도는, 이미지로 작동하는 현대 정치의 본질을 보여준다.
“죽는 게 무섭지? 그건 네가 인간이라는 뜻이야. 넌 소중한 존재잖아”라고 말하며 미키 18을 회유하는 장면은, 그가 인간성을 강조하는 척하면서도 철저히 도구로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디테일은 일파가 인류를 지칭할 때 처음엔 ‘맨카인드’라고 했다가 ‘휴먼카인드’로 고치는 장면이다.
이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정치적 올바름 담론을 피상적으로 수용하는 ‘말버릇’이자, 진심 없는 정치적 연출의 상징이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한 독재를 넘어, 연출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드러낸다.
5. 죄의식과 반복되는 자기 벌
미키는 자신을 ‘죄인’으로 여긴다. 그는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사망한 사건은 기계의 결함 때문이었지만, 그는 “내가 빨간 버튼을 눌렀다”는 기억을 통해 그 죽음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
이는 단지 죄책감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세계를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심리적 장치다.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죄의식은 자아와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반응이다. 현재 반복되는 죽음과 실험조차, 그는 자신이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여김으로써 감당해낸다.
꿈속에 나타난 일파가 “사실은 너도 원하고 있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미키가 식민주의적 미래를 원한다기보다는 죄의식을 통해 통제 가능한 삶을 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남긴다.
6. ‘나’는 어디서부터 다른가?
미키 17은 자신과 미키 18이 전혀 다른 존재라고 느낀다.
그는 “이전까지는 한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삶이 연속됐지만, 멀티플이 나를 죽이면 그건 그냥 다른 사람이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몸이 똑같고, 기억도 이어지지만, 정체성은 연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이는 "원본 몸과 프린트된 몸은 정말 똑같다. 구별할 수 없다. 그럼 같은 사람 아니냐"고 묻지만, 영화는 이를 부정한다.
꿈속 일파는 “귀신인지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몸을 만져보라”고 말하지만, 이미 죽은 일파는 환영일 뿐이고, 신체는 더 이상 현실과 환영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는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7. 이름, 애도, 존재의 증명
영화 속 마마 크리퍼는 모든 크리퍼의 이름을 기억한다. 이름을 아는 것은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다.
나샤는 “미키는 미키 반스였어”라고 말하며, 그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음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미키의 죽음을 반복 가능한 것으로 본다.
죽음을 애도하지 않아야, 미키는 소모품이 될 수 있다. “죽지 않는다”고 믿어야만 체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나샤가 죽어가는 미키의 곁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그가 고유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윤리적 행위다. 이름, 애도, 기억은 존재의 조건이다.
8. 통일성과 고유성의 충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미키’라는 존재의 통일성과 고유성이 충돌한다. 미키 1부터 17까지가 모두 하나의 존재였다는 믿음은, 미키 18의 등장을 통해 흔들린다.
만약 그들 각자가 고유한 자아를 가진 존재라면, 17이 1~16의 기억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것은 정당할 수 없다. 반면 모든 미키가 동일한 자아라면, 각각의 죽음은 충분한 애도를 받을 필요가 없어져 버린다. 카이는 “미키 17은 네가 가져, 나는 18을 가질게”라고 말한다. 이는 두 미키를 서로 다른 개체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반면 나샤는 “미키는 쿠키처럼 쪼개 먹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두 개체를 동시에 사랑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두 사람을 하나의 역할로 통합하려는 또 다른 폭력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철학적 딜레마를 끝내 해결하지 않는다. 미키 18을 죽이고, 프린터를 폭파함으로써 질문 자체를 봉인해버린다.
9. 권력 비판의 한계와 인간 중심주의
‘미키 17’은 마샬 부부를 악의 중심으로 묘사하며 서사를 단순화한다.
마샬이 죽자 지지자와 반대자 간의 갈등은 단 10초 만에 정리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샬리즘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프린터를 만든 과학자, 익스펜더블을 승인한 위원회, 미키를 거리낌 없이 소모품으로 받아들인 공동체 구성원들 역시 모두 체제의 일부였다.
영화는 이 구조적 문제를 개별 악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관객이 더 넓은 질문을 던지지 않도록 만든다. 반식민주의와 비인간 담론도 마찬가지다.
크리퍼는 인간의 언어에 가까운 소통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존해야 할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단지 벌레처럼 보였다면? 우리가 해충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생명에 위계를 매기고 있는 것이다. ‘죽여도 되는 존재’로 만드는 정치, 그것이 진짜 문제다.
‘미키 17’은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다시 질문할 수 있는 자리를 열어주는 영화다.
그래서 우리는, 봉준호가 멈춘 그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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