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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취미

야구부의 운명은?⚾ | 박용택 야구 해설위원 [쿠앤에이]

목차 📚

📌 먼치 POINT

1. LG 트윈스와 함께한 선수 인생과 대중과의 인연

  • 어린 시절 꿈꿨던 LG 트윈스에서 19년을 활약하며 '팀의 상징'이 되었고, 등번호 33번은 영구결번

  •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다른 팀을 떠올린 적 없을 정도로 소속팀에 대한 애정 깊음

  • 첫 타석부터 은퇴식까지 팬들과의 순간들이 가장 소중한 기억이며 팬클럽 ‘용택앓이’와의 유대도 여전

  • 꾸준함으로 성취를 이룬 선수였고, 후배 선수들과 ‘가늘고 길게 가라’는 삶의 태도 공유

2. 새로운 도전과 후배에게 전하는 조언

  • 해설위원으로서의 활동은 부담이 크지만 ‘자신감은 준비에서 나온다’는 철학으로 매 순간을 준비

  • ‘최강 야구’ 등 콘텐츠를 통해 야구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

  • 고려대 시절은 야구에 집중하느라 학교생활은 제한적이었지만, 작고 소중한 추억들이 남아 있음

  • 후배들에게는 스펙보다 ‘노력의 생활화’가 중요하며, 대학 생활을 성장의 시간으로 삼으라고 조언


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저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98학번 박용택입니다.
LG 트윈스에서 야구 선수로 19년 간 활동했고, 주로 좌익수와 지명타자 포지션을 맡았습니다. 등번호는 33번인데 영구 결번이 되었습니다. 저는 야구 선수로서는 진짜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LG 트윈스와 함께한 19년, 꿈을 이룬 야구인생

1990년 6월 3일 일요일, 제가 야구를 시작한 그 해는 LG 트윈스가 창단한 해였습니다. 그 해에 바로 우승을 했죠. LG 트윈스가 서울 팀이었고 저도 서울 사람이었던 터라, 제가 항상 응원하고 동경하던 팀이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제가 가고 싶은 팀에 첫 번째 지명으로 드래프트에 지명됐고, 실제로 LG 트윈스에서만 19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이는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LG 트윈스 하면 박용택이라는 이름이 생각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막연한 꿈이었는데, 어릴 때 가졌던 꿈을 이룬 선수가 되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19년 동안 우승을 못 해봤다는 것이 많이 아쉽고, 어쩌면 정말 슬픈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LG 트윈스 말고 다른 팀에서 야구를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특별한 순간들과 팬들과의 인연

은퇴를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데뷔 첫 경기인 2002년 4월 1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의 첫 타석 느낌입니다.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10년 차 정도쯤 됐을 때 제 공식 팬클럽인 '용택앓이’라는 팬클럽이 생기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최강 야구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매 경기에 와서 보고 계시죠. 저와는 평생 갈 수 있는 팬분들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은퇴를 하게 되어 팬들이 없는 은퇴식을 해야 하나, 온라인으로 은퇴식을 해야 하나 여러 가지 구상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결국 야구장에서 정말 많은 팬들 앞에서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코로나19가 지나고 나서 2년 뒤인 2022년에 정식으로 은퇴식을 했습니다.
제 은퇴식에 많은 팬분들이 야구장에 오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금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해설위원으로서의 새로운 도전

해설은 정말 어렵습니다. 제 얘기에서 어느 한 팀을 더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면 많이 혼납니다. 어떻게 호흡하는지도 상당히 중요하고, 신경 쓸 것들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생방송으로 4시간을 얘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는 시간이 없어야 하죠. 그 경기가 끝나면 "그 얘기 괜히 했다", "그때 이런 얘기를 좀 했었으면" 하는 것들을 다시 정리해보고, 다음 경기 때는 좀 더 나은 해설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얘기 중 하나가 "자신감은 다짐이 아니라 준비다"입니다. '나 자신 있게 할 거야'라고 한다고 해서 자신감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내가 그만큼 완벽하게 준비를 했다고 생각이 들어야만 자신감이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야구는 배트를 들었을 때 그런 자신감이 항상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으로 방송을 훈련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잘할 수 있을까라는 어느 정도의 불안감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야구 대중화와 최강 야구의 역할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의 인기는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 기회에 취해 있으면 안 됩니다. 정말 모든 야구인들이 지금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졌고, 또 이 인기를 계속해서 유지하려면 어떤 것들을 해야 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최강 야구의 힘도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야구를 전혀 몰랐는데 최강 야구를 보면서 야구를 배워서 "그럼 나도 어느 팀 응원해야 되겠다"며 야구에 입덕하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야구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룰이 너무 많아서 어느 해설위원도 어느 심판도 모든 룰을 다 머릿속에 넣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입 장벽이 높은데, 그런 것들을 최강 야구가 되게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팬의 유입이 가장 시급한 숙제였는데, 올 시즌 정말 많은 새로운 팬들이 생겼습니다. 인증샷을 찍고 먹거리들부터 시작해서 한국 프로야구가 유례없는 인기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가늘고 길게" - 꾸준함으로 이룬 성취

박용택은 최고의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잘 버티고 잘 버텨서 그래도 뭔가를 이루어낸 그런 선수였던 것 같습니다.
LG 트윈스에 제가 좋아하는 후배 임창규라는 선발 투수가 있는데, 저에게 항상 "투수 박용택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선배를 놀리는 건가 싶은 마음이 있죠.
또 “가늘고 길게 가겠습니다"라는 말도 자주 합니다. 실제로 저는 20대 때보다 30대 때의 10년을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냈던 선수입니다. 임창규 선수도 30대에 지금 더 좋은 성적을 계속 꾸준히 내고 있습니다.

삼성의 구자욱이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개인 성적으로 봤을 때는 사실 저보다는 한 수 위입니다. 젊은 시절 훤칠한 외모, 긴 팔다리 이런 것들이 비슷하다는 얘기를 가끔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팀 성적, 개인 성적은 만족스러워도 팀이 계속 우승을 못하면 계속 뭔가 찝찝한 게 있습니다. 제 주위에 유희관 같은 친구들이 "형 우승 반지 없잖아요"라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지금 벌써 구자욱 선수가 10년 차가 넘었는데 아직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정말 한 10년은 더 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내고 있어서, 꼭 구자욱 선수는 은퇴하기 전에 우승을 하고 은퇴했으면 좋겠습니다.

야구부 시절의 특별한 추억

제가 대학생 4학년 때 마지막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갔는데, 결승전 다음 날이 고연전이었습니다. 둘 중 한 경기에 몰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감독님이 4학년들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고연전을 치르려면 1년이 피곤합니다. 4월부터 고연전 때까지 훈련량부터가 달라집니다. 게다가 그 당시만 해도 체벌이 있던 시절이라 상당히 피곤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4학년이라 끝나면 없어지면 됩니다. 그래서 4학년들이 "우리는 그래도 결승전에 최선을 다하는 게 맞습니다. 우승하고 그 기분 그대로 가져가서 연대도 이기면 되죠"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결승 전날 우리가 우승을 했고, 저도 그 대회 MVP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정기전에서는 연대에게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제가 4학년 때 3학년에 이택근 선수, 1학년에 정근우 선수가 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지금도 저와 만나면 그때 얘기를 합니다. "대회 우승하고 MVP 받고 프로 갔으니까 좋았을 거다”, “그 뒤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한지 모르고"라는 식입니다.

대학 생활의 추억

그 당시에는 에이스급들부터 과를 선택할 수 있게 해줬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선택은 아니고 두 번째 선택할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최희섭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메이저리거 타자가 첫 번째 선택을 했는데, 보통 선배들은 농구, 축구, 야구 할 것 없이 다 거의 경영학과가 1지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최희섭도 당연히 경영학과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법대로 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가고 싶었던 경영학과를 선택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고려대학교 학생 야구부원이 아니고, 고려대학교 소속 야구 선수였습니다. 숙소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한 18시간씩 야구를 했습니다.
대회가 끝나면 며칠의 휴가를 주는데, 그때 거의 학교 견학을 가는 느낌이었죠. 수강 신청도 해놓은 것들도 있고 교수님 얼굴들도 한 번도 못 뵀으니까, 그럴 때 가서 출석하고 “교수님, 야구부 박용택입니다” 하고 인사드렸습니다. 그 뒤로는 "박용택이 이렇게 생겼구나", "진짜 야구 선수예요?" 이런 대화들이 오갔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1학년 때 이화여대 축제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이 제가 학교를 처음 간 날이었어요. 처음 가서 너무 뻘쭘해서 과방 같은 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들어가 봤는데 친구들이 다들 "뭐지? 누구지? 뭐 하시는 분이지?" 라는 표정이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자기소개를 하자 "진짜 야구 선수예요?" 하면서 친하게 해줬습니다.
점심을 짜장면을 시켜 먹었는데 제가 사겠다고 했고, 우리 이제 이대 축제하는 데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해서 그날 하루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학교 생활의 추억은 그냥 그날의 추억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마치며

고려대학교에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압니다. 후배님들은 그걸 해낸 친구들입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대학도 잘 못 간 친구들이 나를 추월해 있는 상황들도 상당히 많이 생깁니다. 여러분이 어떤 노력을 생활화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지금도 선수 때보다 더 바쁜 것 같고, 더 열심히 사는 것 같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이틀이라도, 저에게 휴식 시간이 주어지면 불안합니다. "내가 지금 이 황금 같은 시간을 가지고 뭐 하고 있는 거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고려대학교는 지금의 저 박용택을 만들어 준 곳입니다. 대학 생활은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시간보다는, 내가 진짜 멋있는 사회인이 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Created by 고려대학교 Korea University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에디터 최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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