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결이요? 그냥 버텼어요 | 강다솜 아나운서 [쿠앤에이]
📌 먼치 POINT
1. 직업 선택의 전환과 아나운서의 삶
법학 전공이 맞지 않아 흥미를 좇아 아나운서로 진로 전환
라디오의 따뜻한 기억이 동기가 되었고, 첫 방송 실수도 청취자의 위로로 극복
10년 넘게 버틴 이유는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 때문
일상의 틀에서 벗어난 취미 활동(여행, 사진)이 삶의 활력소 역할
2. 20대의 무모함과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이들은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이유를 꼭 간직해야 함
20대는 크게 일을 저질러도 괜찮은 시기이며, 실패를 감당할 여유가 있는 시기
어른이 되어 겁이 많아질수록, 과감히 도전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길 바람
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법학과 출신 강다솜입니다. 지금은 MBC에서 15년동안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모두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을까?' 저는 4년간 법을 공부했는데 재미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분야인데, 이렇게 흥미없는 분야에 평생 종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다른 분야를 찾아보자고 마음먹고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라디오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라디오 DJ를 하고 싶었는데, 라디오 DJ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하는지 찾아보니 그중에서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라디오가 가장 좋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아나운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10년을 버텨낸 비결
아나운서로서의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저는 이직을 못한 케이스입니다. 3년 차가 되면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하는데, 저에게도 그런 마음이 아주 격하게 왔습니다.
하지만 그때 탈출하기에는 아까웠습니다. 제가 아나운서 준비를 굉장히 열심히 한 편이었거든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이곳에 들어왔는데, 지금의 타이틀과 노력들을 어딘가에 내세우려면 최소 10년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전문가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 10년만 버텨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버티다 보니 10년이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라디오가 주는 따뜻함과 첫 방송 실수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라디오가 따뜻했습니다. 제가 라디오를 하고 싶어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예전의 한 순간 때문이었습니다. 햇살이 들어오고 먼지가 날리는 것도 보이는 그런 날, 빨래를 개는데 엄마가 라디오를 켜놓으셨습니다. 그때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나는'이라는 노래가 나왔고, 엄마와 함께 흥얼거리며 빨래를 갠 적이 있습니다. 그 순간이 제 기억에 영화처럼 아주 특별하게 남았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그렇게 제 마음에 오래도록 각인되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은 라디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노래가 나왔던 순간과 그 노래를 소개하는 DJ의 멘트, 그리고 그 노래를 함께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 덧붙여져서 '나도 이런 순간을 누군가에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라디오 DJ를 꿈꿨습니다.
막상 해보니 제가 누군가에게 선사해 주는 것보다 함께 듣고 있는 청취자들이 저에게 만들어주는 순간들이 더 많았습니다. 첫 라디오 방송에서 실수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앞에 있는 여러 개의 시계를 잘못 봐서 광고가 나가야 하는데 제 말을 계속 했고, 갑자기 광고가 나가버렸습니다. 저도 놀라고 PD도 당황했습니다.
실수를 하고 나선 굉장히 우울했습니다. 전문가의 영역은 실수를 하면 안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수한 후 제게 문자가 많이 왔습니다. 그때는 다솜 DJ를 줄여 저를 '솜디'라고 불렀는데, 청자분들이 "솜디 괜찮아요”, “이런 실수는 초보자들이라면 다 하는 거죠”, “우리끼리인데 실수해도 뭐 어때요?"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 정말 울컥했고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과 사진, 나만의 아지트 같은 시간
사진사 솜으로서 여행지를 몇 군데 추천해드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추천 여행지는 포르투갈의 포르투입니다. 리스본은 굉장히 유명하고 포르투는 조금 더 작은 도시입니다. 색감이 엄청 알록달록하고 정말 예쁩니다. 도시 자체가 혼자 오는 사람들도 많고 친절하며, 노을과 일출이 아주 멋집니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집필 중 영감을 받은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거기에 있는 한 카페에서 실제로 집필을 하기도 했고, 렐루 서점에서는 호그와트의 움직이는 계단에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남프랑스도 다녀왔는데, 거기는 색감이 조금 달랐습니다. 알록달록한데 좀 연한 느낌이었습니다. 거리를 걷다가 사진을 찍어도 다 예쁘게 나옵니다. 저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니까 그만큼 좋은 게 없었습니다. 남프랑스에서만 느껴지는 그 여유가 있었습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옆에 사람이 여유 있으면 나도 좀 여유로워지는, 그 도시가 주는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길거리 스냅을 찍기 때문에 제가 찍은 사진에서도 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노부부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찍기도 하는데, 거기서 그 사람들을 인터뷰할 수도 없으니까 그 안의 이야기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저 혼자 짐작해 보는 거죠. '저 노부부는 얼마나 함께 시간을 보냈을까,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을까, 저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하면서 상상하며 많이 찍는 것 같습니다.
노란 차가 서 있을 때 뒷배경도 노란색이고 하늘은 파란색이라면, '색감 조합이 멋지다'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그 사진 안의 차가 사실 찌그러져 있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안 보였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그렇게 찌그러진 차를 찍었다는 것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뭔가에 반하면 그런 것도 안 보이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미 생활이 주는 에너지
저에게 취미 생활의 시간은 아지트 같습니다. 다른 것에서 벗어나서 온전히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생각도 정리가 되고 시끄러웠던 것들이 좀 조용해지는 그런 느낌입니다. 일상이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데, 거기에서 좀 벗어나면 확실히 다른 에너지가 생깁니다.
취미를 가지기도 버거운 마음은 정말 이해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출근하는 것조차 힘들거든요. 하지만 취미가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바일 게임도 나의 취미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내가 행복하고 편안하고 나만 좋으면 됩니다.
아나운서 준비생들에게 전하는 조언
아나운서를 준비한다고 했을 때 가장 두려운 부분이 경쟁률이 굉장히 높고 사람을 잘 뽑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준비 과정에서 흔들릴 것입니다. '내가 이걸 계속 준비해도 되나, 내가 가는 길이 맞나' 하는 고민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싶었는지 그 이유를 잘 정리해서 마음 안에 잘 간직해 두시기 바랍니다. 어떤 파도가 와도 방패가 되어 줄 것이고, 그 방패가 동력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20대, 크게 일을 저질러도 되는 시간
저에게 20대란 가장 무모하고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려대는 제 20대 시절의 상징 같은 곳입니다.
저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저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계속 모여서 노래방에 가서 연습을 하고, 그러다 결국 공연도 했습니다. 잘한 공연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해냈습니다. 우리끼리 포스터도 만들고 길바닥에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훌륭한 공연을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멋진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니 관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했다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자신과 동료들을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그 시절은 졸업을 한 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제게 많은 힘이 되어주는 기반입니다.
마치며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후배들은 20대겠죠. 그렇다면 크게 일을 저질러 보세요. 그래도 되는 것 같습니다.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크게 내 행동의 반경을 넓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면 겁이 많아진다고 하죠. 겁이 많아질 때마다 제 대학 시절을 한번 생각해 보곤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도전해 보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해봤던 때 말입니다. 사실 아나운서도 약간 그렇게 도전한 것도 있습니다. 다들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가끔은 무모하더라도 용기를 내보세요.
Created by 고려대학교 Korea University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에디터 최수아
고려대학교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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