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좋죠, 우리만 힘들죠 | 정상원 셰프 [쿠앤에이]
📌 먼치 POINT
1. 과학도에서 셰프로, 그리고 요리 철학의 완성
고려대 생명과학과를 졸업했지만, 프랑스 음식에서 창의적 영감을 받아 요리사의 길을 선택
절대미각에 가까운 감각과 반복된 실수를 통해 요리 실력을 쌓으며 미쉐린 레스토랑 셰프로 성장
요리는 정답이 없는 창작 활동이며, 매 순간 같은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
2. 식탁 위의 이야기와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
손님과의 기억, 감정이 요리보다 오래 남기에, 식사는 시간을 기억하게 하는 매개체
작은 실수 속에서도 진심 어린 대응은 오히려 감동을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함
후배들에게는 데이터보다 ‘자기만의 경험’이 더 중요하며, 직접 부딪혀 얻는 감각 강조
학교에서 배운 삶의 태도와 질문하는 자세가 미래의 나 자신을 만드는 것
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저는 고려대학교 97학번 생명과학부를 졸업한 정상원 셰프입니다. 프렌치 레스토랑을 거의 20년간 운영하며 미쉐린 가이드에도 선정되었습니다.
한국판 미쉐린 가이드라 할 수 있는 코리아헤럴드의 코릿(KOREAT)에서는 한식, 중식, 양식을 모두 포함하여 대한민국 2위에 선정되기도 했죠. 지금은 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오히려 더 바쁜 것 같습니다. 방송도 쉽지 않고, 그 외의 일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 특별한 미각 재능과 요리 입문기
저는 처음부터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원래 고등학교 때도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고려대는 그때 미대가 없었고 다른 학교 미대를 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유학 준비를 하다가 프랑스에서 음식을 먹어보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음식에 대한 다양한 표현 방법과 이야기가 담아있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고, 이런 것까지 음식에다가 넣어서 사람들한테 전달하는 것이 신선했죠.
저는 절대음감처럼 정확하게 음 없이도 맞출 수 있는 것처럼, 먹어보면 그 맛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재료를 알려주지 않아도 그런 기술이 있었습니다. 대학생 때도 소주 같은 경우 라벨을 보면 F1, F2라는 게 있는데, 이 두 소주의 약간 다른 맛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날 소주는 달고 어떤 날 소주는 쓴데, 이게 물이 달라서 그런 부분도 있습니다. 그것도 내기를 하면 정확하게 찾아내고 맞추곤 했었죠.
🧑🏻🍳 미쉐린 가이드, 영광과 부담 사이
미쉐린 가이드는 정말 비밀리에 다양한 선정 업체들이 운영하며, 정말 엄격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추측은 합니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두 번 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가게 주소나 전화번호 등이 필요해서 이메일이 오는데, 그 이메일을 받았을 때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대학이나 회사에 합격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죠.
셰프들에게는 일단 미쉐린이 하나의 챌린지가 됩니다. 어느 날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매일매일 깨끗하게 해야 되고, 더 신경을 써야 됩니다. 평균적인 퀄리티를 올려야만 하죠.
어느 날 딱 하루만 진짜 대단한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매일 매 순간마다 대단한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쉐린은 좋지만, 우리는 힘들죠. 여성분들이 매일 풀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 집에서 만드는 프랑스 요리: 토마토 파르시
자취생도 집에서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프랑스 요리를 하나 알려드리겠ㅅ브니다. 프랑스 음식 중에 파르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파르시는 불어로 '채우다'라는 뜻입니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잘 익은 커다란 완숙 토마토를 꼭지 있는 채로 위에 뚜껑을 만들고, 안에 속을 파냅니다. 그러면 용기가 만들어집니다. 커다란 것이면 커다란 대로, 작은 것이면 여러 개를 예쁘게 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 안에 무엇을 채우느냐만 고민하면 됩니다.
토마토와 새우, 애호박, 가지 등을 볶으세요. 소스도 아까 파낸 토마토를 활용하거나, 시판되는 토마토 소스나 케첩을 섞으면 됩니다. 팬에서 볶은 재료의 간을 맞춰서 토마토 안에 꾹 눌러서 채웁니다. 카레 같은 것을 넣어도 되고, 소고기 카레나 스테이크와 아스파라거스를 넣을 수도 있습니다.
집에 오븐이 있으면 오븐으로, 아니면 전자레인지로 간단하게 토마토가 익힙니다. 5분에서 10분 정도면 충분히 익습니다. 너무 익히면 토마토가 무너져버리니까 따뜻할 정도로만 하고, 뚜껑까지 마지막에 꼭 올려야 합니다. 꼭지 부분을 살려서 구우면 예쁘게 구워집니다.
🎄 실수로 배우는 요리사의 성장기
처음 주방에서 일할 때는 실수도 많았습니다. 새우를 구우라고 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니까 커다란 새우가 아닌 새우젓 새우를 예쁘게 구워서 가져갔다가 옥상으로 끌려가서 한참 소리를 들었습니다. "너는 아무 생각이 없는 거냐"라고 하셨지만,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 몰라서 하는 실수들이 자신을 키우기도 하고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또 인상적인 실수가 하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한번 식당이 만석이 되어 정신 없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수증이 쭉 꽂혀 있는데 음식 하나가 타버린 것입니다. 큰일 났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그 테이블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우선 술을 드리고 원래 드리려던 음식 대신 주방 옆에 테이블을 조그맣게 차려서, 오마카세처럼 조금씩 나오는 음식들을 드렸습니다.
사실 식사는 망친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 좋아하셨습니다. 다음 크리스마스에 남자분이 전화해서 그 자리를 다시 예약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물론 "단 한 번의 기회다. 다시는 그런 일은 없다"고 하고 정상적인 식사를 하고 가셨습니다.
그 문제가 막 발생했을 때 해결되기 전에는 정말 식은땀이 났습니다. 한 팀 한 팀이 엄청 중요한데, 이게 다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이렇게 임기응변으롣 대처한 경험이 하나씩 쌓이면서 양분이 됩니다.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만, 실수보다 중요한 건 대처 능력입니다. 이것은 레시피만 많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 식탁 위의 특별한 순간들
결국 본질적인 것은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정말 좋아했을 때,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식탁에 잘 펼쳐졌을 때가 가장 좋습니다.
한 번은 고등학생이 다 된 아이가 와서 "제가 엄마 배 속에서 처음 셰프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 맛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뱃속에 있을 때 내 식당에 왔던 아이가 지금 이렇게 컸다고 생각하니 뿌듯함과 성취감이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 노부부였습니다. 금혼식까지 매 결혼 기념일마다 저희 식당에 방문하신 분들입니다. 아내분은 카메라로 음식 사진을 소녀처럼 찍으시고, 남편분은 그 아내의 사진 찍는 모습을 또 찍으셨습니다. 자기 아내를 소녀처럼 느끼게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은 항상 5만 원권 신권 하나를 놓고 가셨는데, 팁 치고는 굉장히 큰 금액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혹시 내 아내가 혼자서 추억을 찾아서 이 식당에 오게 된다면 좀 더 잘 대접해드려라'라는 남편분의 감정이 정확하게 느껴졌습니다. 눈물이 또르르 났죠. 어느 해부터 안 오셔서 어떻게 됐을까 생각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사는 시간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어떤 생일날 어떤 식당 이름으로 그 시간을 기억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잘 만들어지고 식탁 위에 문제가 없이 이야기들이 잘 펼쳐졌을 때가 제일 성취감이 있습니다.
🏫 셰프의 일상과 요리 철학
<흑백요리사>와 <냉장고를 부탁해> 라는 두 프로그램 중에서는 후자가 더 끌리는 것 같습니다. 흑백요리사는 부족한 시간을 가지고 다투는 거고, 냉장고를 부탁해는 부족한 재료를 가지고 다투는 거라면, 재료를 다루는 게 더 스트레스가 적을 것 같아서입니다. 재료가 부족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접시 위에 탁 펼쳐지는 순간도 있겠지만, 시간이 재어져 나간다면 좀 힘들고 촉박할 것 같습니다.
케비어, 푸아그라 같은 것이 냉장고에 있냐고 물어보시는데, 절대 없습니다. 집 냉장고에도 그런 건 없고, 고추장이 들어 있고 다 똑같습니다. 냉장고에서 없으면 불안해지는 게 마늘이고, 특히 파는 꼭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파의 단맛이 정말 좋거든요. 냉장고에 파가 들어있으면 뭘 해도 든든합니다.
라면에 대해서는 고려대 후문 쪽 야구장 지하에 있던 '특라면'이라는 할머니가 하시던 라면집이 기억납니다. 항상 한 개 반을 기본으로 푸짐하게 주는 라면집이었는데, 먹고 나면 부대끼지 않았습니다. 주방을 몰래 봤더니 양배추를 되게 잘게 썰어서 국물에 넣는 거였습니다. 음식이 완성됐을 때는 거의 양배추 형태가 없을 정도였지만, 그 셀룰로스와 성분들이 속을 편안하게 해준 거죠. 집에서 만들 때도 아주 잘게 썰어서 넣으면 속에 좋습니다.
학창시절 저는 당연히 축제 때 주점도 했고, 파전, 잔디파전, 막걸리도 팔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려대 축제 시절에 철쭉꽃이 되게 많이 피는데, 지금의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때였다면 잔디를 뽑지 않고 철쭉을 깨끗이 닦아서 꽃전을 만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 도전해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만약 먹고 탈이 나도, 고려대병원은 항상 열려있으니까요.
마치며: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요즘 시대에는 AI나 ChatGPT만 사용해도 손 쉽게 데이터를 얻을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직접적 경험입니다. 나가서 봤을 때 느껴지는 것들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갈라파고스 섬은 외부와 교류가 없어야 되니까 씨앗을 절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커피 씨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재배한 토종 커피만 법적으로 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거기 커피는 맛이 좀 다릅니다.
이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보다 나에게만 있는 것들이 중요합니다. 자기만 갖고 있는 특별한한 이야기들이 결국에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고려대는 하나의 자양분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를 포함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훈을 다 외우고 있을 만큼 좋은 토양이었습니다. 미쉐린은 분명 좋지만, 그 뒤의 노력과 도전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Created by 고려대학교 Korea University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에디터 최수아
고려대학교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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