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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20년간 열등감에 시달린 후, 결말은? | ✏️ 열등감을 도구로 쓰는 법

목차 📚

📌 먼치 POINT

✅ 열등감을 도구로 쓰는 법
- 열등감의 시작
- 어린 시절, 다른 환경을 접하며 비교와 위축 시작
- 외모, 가정환경, 배경 등을 기준으로 열등감 형성

✅ 문학을 통한 위로
-
작가들의 글에서 열등감에 대한 공감과 위로 발견
- 감정을 없애기보다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움

✅ 환경 변화의 영향
-
외국에서는 비교보다 진짜 나에 대한 관심을 받음
- 자신이 얼마나 비교에 익숙한 삶을 살았는지 자각

✅ 열등감의 본질
-
결함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 때문
-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 중요

✅ 자기 이해와 수용
-
되고 싶은 모습과 실제 성향의 차이 인정
- 비교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빛나는 길 찾기

✅ 열등감의 긍정적 활용
-
열등감은 ‘원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감정
- 더 섬세한 공감과 배려의 능력으로 이어짐


열등감을 받아 들이는 과정

'정상이라는 환상'이라는 책을 읽다가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열등감에 대해서 남의 이야기로 쉽게 말할 수는 없어서, 이 감정에 참 익숙한 제가 저의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조금 찌질하고 누군가는 한심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다른 세계와의 첫 조우

제가 어릴 때 저희 집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는데, 부모님은 조금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어떤 좋은 환경에 들어가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저와 너무 다른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이 저와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준비물을 어디서 사는지, 간식으로 무엇을 먹는지, 어떤 문화 생활을 하는지, 휴가는 어디로 가는지 제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의 기준이 아예 달라서 정말 많은 것들이 생소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서 어떤 친구 집에 갔는데, 거기가 너무 넓어서 초등학생이던 저는 화장실에 갔다가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친구들이 있는 거실을 찾아서 미로처럼 헤맸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렸으니까 부럽다기보다는 멀리서 창문 너머로만 봐야 할 공간 안에 제가 실수로 들어와버린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외모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친구들과 있으면 제 신발이 낡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위축되고 비교하게 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친구들이 있는 세계가 모든 것이 너무 매끈해서 제 모습이 유난히 투박해 보였습니다.

어떤 자리에 가면 사는 동네나 부모님의 직업이 저라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좋은 동네에 살거나 부모님의 직업이 화려한 것도 아니었고, 당연히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속에서 제가 자꾸 작아졌습니다. 스스로가 굉장히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열등감도 그렇게 천천히 제 삶의 저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문학을 통한 위로와 공감

그러다가 우연히 박완서, 조지오웰, 프란츠 카프카 이런 작가들의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작가들도 저처럼 정체성과 열등감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언어 문화 분위기 이런 데서 겪는 미묘한 차이들 속에서 생긴 자기 검열로 힘들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자인 아이들 틈에서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 나이에 도덕적으로 실패한 것 같은 굴욕"이라는 조지오웰의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제 감정을 대신 표현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정확히 똑같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이 감정만큼은 저도 또렷하게 느꼈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어떻게 극복했나 궁금해져서 책을 더 읽어보니까, 이 작가들은 이것을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감정과 함께 살아내는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감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말로 꺼내라. 언어로 기록하면 그것은 존재를 견디게 해준다. 이것이 너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환경 변화를 통한 깨달음

제가 외국에서 잠깐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아무도 저의 나이, 사는 동네, 출신 학교, 다니는 회사 이런 것은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서로에게 말하는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제 뭐 했어? 주말에 재미있는 일 없었어? 너는 뭘 좋아해? 앞으로 뭘 하고 싶어?" 이렇게 저를 평가하려는 의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저에 대한 소소한 관심이나 리액션 차원의 말들이 오갔습니다.

친해질 때도 "넌 요즘 고민이 뭐야? 진짜 쉬고 싶을 땐 뭘 해? 너는 어떤 공간에 있을 때 편해? 너 그렇게 혼자 있으면 어떤 생각 많이 해?" 이렇게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되 위계나 비교 없이 제가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질문들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경험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을 만나니까 관계 맺을 때 정말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비교 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열등감의 진짜 원인 찾기

외국에서는 열등감을 거의 느끼지 않다 보니 이상했습니다. 환경이 바뀌니까 열등감이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열등감을 만드는 구조가 있는 것은 아닐지 더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고민해 보니까 그제서야 알겠더라고요. 실제로 나에게 결함이 있을 때 열등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저를 볼 때 그때 열등감이 생겼습니다. 남의 시선, 남의 기준으로 저를 평가할 때 "이것을 못하면 바보처럼 보일까" 그런 생각이 들 때 열등감이 더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보여지는 나, 보이는 나를 더 신경 쓸 때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나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책에서 봤던 것인데, 비교 대상을 남이 아니라 나로 정하면 흐뭇한 마음이 일어날 때는 건강한 우월감이 생긴 것이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는 건강한 열등감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둘 다 건강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이해를 통한 열등감 극복

제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이것을 알게 될 때 열등감이 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옆에 있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생기 있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제 성격은 굉장히 내향적이고 그렇게 표현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것은 제 성격상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럴수록 제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저는 이 열등감으로 괴로워하기 전에 내가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인지부터 차분하게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금 이 성격으로 생기 넘치고 유쾌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은 내 한계나 성향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나다운 방식으로 빛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생기 있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보면 예전처럼 위축되기보다는 그 사람만의 빛이 보입니다.

열등감을 도구로 활용하는 법

오랜 시간 동안 열등감을 갖고 지내다 보니까 이것이 뜻밖의 장점도 있었습니다. 열등감을 나쁘다고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역이용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열등감을 들여다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열등감이라는 것이 겉에서 보면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 하는 자책인데, 사실은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바람의 다른 얼굴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너무 부럽습니다. 이 마음의 이면에는 생각을 유려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고 즐거워지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제 마음의 이면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열등감이라는 껍데기를 들쳐 보니까 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지고 싶은지 드러났습니다. 또 저는 위축되고 비교당한 경험이 많으니까 다른 사람이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이 민감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마음이 다칠 만한 순간을 빨리 눈치채게 되는 장점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꼭 대단히 뛰어난 공감 능력이라기보다는 예전에 제가 너무 자주 움츠러들었던 기억이 남아서 누구든지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려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의외의 장점도 있었습니다.

맺으며

저는 어릴 때 여러 감정에 휘둘리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팔레트에 여러 색감의 물감을 섞다 보면 결국 탁한 회색이 되는데, 그런 느낌으로 제 마음도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회색인 채로 지낸 시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것이 열등감이었고 위축이었고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그 감정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나니까 그 혼란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그 감정이 왜 왔는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 더 명확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도 가끔 그런 회색빛에 허덕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에 속절없이 휘둘리기보다는 그 속에서 저만의 방법을 찾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여전히 열등감이 생길 때가 많지만, 이제는 이 감정을 무조건 없애야 할 문제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열등감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감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Created by 내성적인 옆집 엄마
교정 SENTENCIFY  / 편집자 최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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