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표는 대통령을 바꿀 수 없다
📌 먼치 POINT
투표 참여의 경제학적 역설과 합리성의 재정의
개인의 한 표가 선거 결과를 바꿀 확률은 극히 낮음에도 사람들이 투표하는 현상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
경제학적 합리성은 목표의 성격과 무관하게 자기 목표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
올바른 정보가 주어졌을 때 행동을 수정하는 능력이 합리성의 핵심 판단 기준
투표 참여를 설명하는 다양한 경제학 이론들
다운스의 민주주의 체제 유지론: 투표의 목적을 민주주의 체제 자체의 유지로 설명
공공재 무임승차 문제로 인한 다운스 이론의 한계점 존재
브레넌과 로마스키의 심리적 효능감 이론: 정체성 표현과 정치적 선호 공표가 주된 목적
투표의 진정한 가치와 장기적 정치적 메시지
모든 투표는 본질적으로 소신 투표이며, 전략 투표의 실효성은 매우 제한적
개인의 투표는 장기적인 정치적 요구와 사회적 비전을 표현하는 수단
투명한 소신을 통한 정치적 메시지 전달이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드는 원동력
투표 참여의 경제학적 역설
선거에서 단 한 표로 당락이 갈리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투표를 할까? 물론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라면 마땅히 소중한 참정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 제기하고자 하는 질문은 우리가 왜 투표를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왜 투표를 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 즉 규범이 아니라 그 규범이 과반의 시민에게 정말로 작동하는 현상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찾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의문을 가진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나의 한 표가 대통령을 바꾸지 못한다면, 즉 내가 투표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투표를 위해 써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더 크다면 사람들은 왜 투표를 하는가?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의 진짜 의미
경제학이 인간을 합리적인 행위자로 전제한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답변은 투표하는 사람들이 비합리적이고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이런 단순한 결론에 만족할 리 없다.
✔합리성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먼저 경제학적 인간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전제를 많은 경제학자가 채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철학적 관점에서 엄밀하게 보면 이때의 '합리적'이라는 말은 자기 목표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합리성보다 좁은 의미이다.
내일이 시험이고 공부를 하나도 안 했는데 놀고 있는 학생은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재미라는 목표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은 인간이 설정한 목표 자체의 성격이 합리적인지가 아니라 그 목표의 극대화가 추구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따진다.
💰 로또 구매도 합리적 행위가 될 수 있는 이유
합리성 = 목표 극대화라는 등식 하에서는 로또 구매조차 합리적 행위로 설명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로또는 고액의 당첨금을 얻을 확률이 지극히 낮은 기대수익이 마이너스인 상품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는 일확천금을 진짜로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일에 대한 희망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내 삶을 버틸 수 있게 하는 루틴이다"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희망을 얻는다는 목표의 극대화를 아주 합리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확천금을 바라고 로또를 샀더라도 기대수익이 마이너스라는 정보를 알고 나서 구매를 멈춘다면 합리적인 인간이다. 무지나 착각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무지나 착각이 밝혀졌을 때의 행동 변화 여부가 합리성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첫째, 경제학에서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것은 목표의 성격과 무관하게 자기 목표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둘째, 합리적 인간은 정보 부족으로 인해 착각을 하더라도 올바른 정보가 주어지면 자기 목표에 맞게 행동을 수정한다.
투표 참여를 설명하는 경제학 이론들
앤터니 다운스는 이 공리 위에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대통령 선거에 투표하러 가는 목적이 대통령을 뽑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어떤 후보가 대통령에 낙선하거나 당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면 나의 한 표가 당락에 기여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만약 합리적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도 투표를 하고 있다면 이들에게는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 다운스의 민주주의 체제 유지론
이러한 관점에서 다운스는 유권자가 투표로부터 기대하는 이익이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유지 자체라고 보았다. 사람들이 투표를 안 하면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약화되고 정치인들이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며 독재의 유혹에 더 강하게 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경제학계에서 흔히 거론되는 공공재의 무임승차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투표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민주주의의 과실을 얻는 것이 이익이다. 다른 사람들이 투표를 안 한다면 나 혼자 투표한다고 민주주의가 살아나지 않을 것이니까 괜히 힘 빼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덜 손해다. 이렇게만 본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투표를 안 하는 게 나에게 더 이익인 상황이다.
🤔 브레넌과 로마스키의 심리적 효능감 이론
제프리 브레넌과 로런 로마스키의 이론을 빌리자면 결국 투표의 주된 목적으로 남는 것은 심리적 요인, 효능감인 것 같다. 나는 민주주의 사회 일원이라는 정체성, 나는 특정한 후보·이념·정책 패키지를 지지한다는 선호, 나는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실망했기에 정권 교체나 유지를 강하게 열망한다는 분노 등을 표출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투표의 진정한 목적과 가치
그렇다면 차악을 뽑기 위한 선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사실 나의 한 표로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나의 한 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한국의 시민으로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비전·의제 그리고 정치인의 자질이 무엇인지를 소신껏 공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대의민주주의를 조금이나마 더 투명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 모든 투표는 어차피 소신 투표
50%의 국민이 어떤 후보를 지지한다면 그 후보가 50%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것이 민의의 가장 정확한 반영이다. 결론은 후보의 당락을 결정한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투표는 어차피 소신 투표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어떤 후보의 당락에 실제로 기여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기여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뿐이라면 전략 투표를 하라. 하지만 내가 정말 대통령을 결정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는 전략 투표는 누군가가 반드시 1등에 당첨될 로또를 사는 것보다 더 기댓값이 낮은 선택이다. 나 혼자서 그렇게 마법처럼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 장기적 정치적 메시지 전달의 중요성
그렇다면 우리 하나하나가 투표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목적은 당장의 대리인 선출보다 정치계를 향한 장기적인 요구가 아닐까? 경제와 안보와 외교와 교육에 대해, 인구 구조와 국민연금에 대해, 노동 인권과 소수자 차별에 대해, 그리고 기후 위기에 대해 누가 어떤 말을 하고 누가 말을 아끼는지, 누가 누구를 우리의 자리에 포섭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에 대한 나의 동의나 반대를 표현하는 것.
나의 한 표로 이 사회를 바꿀 유일한 방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손으로 좌우할 수 없는 결과를 계산하려 하지 말라. 한 사람의 무력함은 투명한 소신을 통할 때 비로소 무기가 된다.
맺으며: 투표의 경제학적 의미와 시민의 역할
투표 참여의 역설적 현상을 경제학적 시각에서 분석해보니, 개인의 한 표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확률은 극히 낮지만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진정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면, 투표는 당장의 결과 변화보다는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표현, 정치적 선호의 공표, 그리고 장기적인 정치적 메시지 전달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결국 모든 투표는 소신 투표이며, 투명한 소신을 통해 표현된 시민 개개인의 목소리가 모여 민주주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Created by 방구석인문학도
교정 SENTENCIFY | 에디터 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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