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해적들의 나라, 해적공화국의 건국과 멸망
📌 먼치 POINT
1. 해적 공화국의 탄생과 황금시대
1650~1730년은 ‘해적의 황금시대’로, 특히 헨리 에이버리의 대규모 약탈은 전설이 되었다.
바하마 나소는 약탈한 보물을 숨기고 몸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로 부상하며, 해적들의 집결지로 떠올랐다.
1706년부터 나소는 해적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해적 공화국’으로 변모했다.
2. 해적들의 연합과 통치 체계
벤자민 호르니골드와 헨리 제닝스가 공화국의 통치자로 선출되며, 해적들의 연합체 ‘플라잉 갱’이 결성되었다.
해적들은 나름의 규범과 보상 체계를 가진 민주적 조직 문화를 지녔다.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등 유명 인물들이 해적 법률을 기반으로 재판과 통치를 수행했다.
3. 사면과 몰락, 그리고 전설의 유산
영국 왕실은 사면 정책과 현상금 제도로 해적들을 포섭하거나 제거하기 시작했다.
벤자민 호르니골드의 배신으로 해적 연합은 와해되고, 결국 다수 해적이 투항했다.
1718년 해적 공화국은 공식 해체되었지만, 찰스 베인과 검은 수염은 끝까지 도망쳐 전설로 남았다
해적들의 황금시대, 그리고 전설의 시작
바다 사나이들의 시대, 이른바 대항해시대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해적입니다. 만화나 영화 등에서 주요 소재로 사용되면서 어쩌면 실제로 겪었던 역사보다도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해적들이 단순히 해적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들만의 나라까지 만들었다면 어떨까요?
1650년대부터 1730년대 사이의 기간을 보통 해적들의 황금시대라고 불렀습니다. 이 기간은 세 부분의 구간으로 나뉩니다. 1650년대부터 1680년대까지의 첫 번째 기간, 1690년대부터 1715년까지의 두 번째 기간, 마지막으로 1715년에서 1730년까지의 세 구간입니다.
헨리 에이버리의 대규모 약탈 사건
황금시대 중 두 번째 구간에 해당하는 1695년, 해적에 의한 기록적인 습격이 벌어졌습니다. 습격을 당한 것은 무굴제국의 상선 25척이었습니다. 이들은 매년 성지순례를 위한 메카로 향하던 도중 대규모 해적선단에 의해 나포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약탈당한 귀금속과 보석은 약 60만 파운드, 2023년 기준 약 1억 1530만 파운드에 해당하며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거의 2천억 원이 넘는 규모였습니다.
당시 해적 선단을 이끌던 해적의 이름은 헨리 에이버리 혹은 헨리 에브리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잭 에이벌이나 존 에이벌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같은 해적들 사이에서는 롱 벤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습니다. 동시대인들에게 해적왕으로 알려졌던 사나이였습니다. 그는 찰스 2세호의 1등 항해사로 근무하던 동안 임금 체불로 인한 반란이 일어나자 선장으로 추대되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해적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바하마 나소, 해적들의 안식처가 되다
1695년의 대규모 약탈과 나포 사태로 인해 영국은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선박을 나포당한 무굴제국 측에서 영국의 책임을 물었고, 영국에서도 에이버리에 의한 약탈이 자주 보고되었기에 이제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영국의 추밀원과 동인도 회사에서는 헨리 에이버리의 목에 천 파운드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현상금이었기 때문에 역사상 최초의 전 세계적인 수색에 돌입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에이버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양의 약탈 전리품을 싣고 그가 향했던 곳은 바로 바하마의 나소 항구였습니다. 이 당시 바하마를 다스리고 있던 총독은 니콜라스 트로트였습니다. 에이버리는 니콜라스에게 자신을 안전히 숨겨주는 대가로 그가 약탈했던 물건 일부를 상납했습니다. 금과 은 50톤 가량의 코끼리 상아와 자신의 배를 바쳤습니다.
역사가들은 사실상 이것이 해적 공화국의 시초라고 봅니다. 에이버리가 뇌물을 바치고 바하마에 몸을 숨겼다는 것이 다른 해적들에게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아무아무 여러 해적들이 몸을 숨기는 곳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실질적으로 총독이 통치하는 곳이었기에 총독들은 가끔씩 해적을 조사하고 선원을 체포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사실 이것도 그저 단순히 보여주기식에 불과했고, 해적들의 힘은 점점 더 강력해졌습니다.
해적 공화국의 본격적인 건국
진정한 해적 공화국의 태동은 1706년이 시초였습니다.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가 나소를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703년, 1706년 2번에 걸친 공격에 의해서 원래 나소의 주민들 대다수가 섬을 떠나게 되어 이곳에 남은 사람은 해적들이 대부분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영국 정부에게 존재감 없이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은 해적들, 이른바 사약선들에 의해 나소 항구가 점령되면서 완전히 해적들의 나라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713년부터 사약선과 해적들의 유입이 증가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좁은 섬에 많은 인원이 들어오면서 언제까지나 무법 천지로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력한 통치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해적 공화국을 통치하기 위해 뽑힌 것이 두 사람이었습니다. 1명은 유명해적 벤자민 호르니골드였으며, 또 다른 사람 역시 유명해적 헨리 제닝스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었습니다.
두 거물과 그들의 유명한 부하들
이 두 사람도 유명한 해적들이었지만, 이들의 라인에 속한 이들도 상당히 유명한 해적들이 많았습니다. 벤자민의 라인에 속했던 해적들을 소개하자면 첫 번째로 가장 부유한 해적으로 알려졌던 샘 베라미, 두 번째로는 신사적인 해적으로 알려졌던 스티드 보닛, 마지막으로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이름이자 해적하면 떠오르는 인물인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가 있었습니다.
제닝스의 라인에 속했던 해적들도 소개하자면 첫 번째로 잔혹한 성격으로 유명했던 찰스 베인, 두 번째로는 에드워드 티치만큼이나 유명했던 해적 존 레컴, 마지막으로는 여성 해적으로 유명했던 인물들인 앤 보니와 메리 리드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라인에 속했던 인물들의 이름만 보더라도 이 바하마를 통치하게 된 두 명의 해적 벤자민과 제닝스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플라잉 갱의 결성과 해적들의 연합
위에 언급된 모든 인물들과 나머지 해적들까지 합세하여 이 해적 공화국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해적들은 따로따로 활동을 하는 대신 연합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해적 공화국에 모인 해적들이 결성한 것이 바로 플라잉 갱이라 불리는 연합체였습니다. 당시 이 나소에 거주 중이던 정착민은 겨우 100명 남짓이었던 반면 해적들의 수는 그 10배인 1천 명이 넘어갔습니다. 이들은 해역을 오가는 선단을 습격하여 약탈하고 인양 업자를 습격해 큰 돈을 갈취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무법 천지의 해적들 역시도 나름대로 자기들만의 법과 원칙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전리품을 분배하고 또 마을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이것을 제대로 재판할 이른바 치안 판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판사로 추대된 사람이 바로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였습니다. 티치는 판사로 선출된 뒤 해적 공화국을 지휘하고 그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재판을 집행했습니다.
해적들만의 법과 질서 체계
해적 법률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하자면 보통은 해적 규범 혹은 해적 조항으로 불렸습니다. 이 해적 규범은 의외로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1660년대 초반 포르투갈의 해적이었던 바솔로뮤 포르투게스가 처음 제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적선에 타는 선원들 중에는 전직 선원들도 있었지만 보통은 탈출한 죄수나 범죄자들이 대단히 많았기 때문에 아무리 해적선이어도 강한 규칙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공통적인 헌법처럼 규정이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재미있게도 해적들 각자 본인들 해적선만의 규범이 따로 존재했습니다. 그중 규범들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투표권, 약탈품의 배분권, 선원들 사이의 갈등 처리법이었습니다.
의외로 선원들 모두에게는 동등한 투표권이 주어졌습니다. 이런 투표권은 식량 배분에 대한 문제가 벌어질 때 또는 약탈품을 배분하는 것에 대한 일이 생길 때 필요했습니다. 약탈품의 배분 같은 경우는 직급에 따라도 달랐습니다. 보통 가장 중요한 역할인 선장과 배의 보급을 도맡는 보급관의 경우 1인당 선원 2명 분의 약탈분을 배분받았으며, 항해사 포수 배사공은 1인당 선원 1.5명 분의 몫을 받았습니다. 고참 선원이나 선원들의 지휘를 맡은 간부급의 선원은 선원 1.25명분의 몫을 나눠 받았습니다.
선원들 간의 갈등이 벌어지면 징계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또 배를 버리고 도망쳤다가 붙잡히면 처형을 당했으며, 무기 손질을 소홀히 할 경우에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의외로 보상 제도까지 있는 해적선도 있었습니다. 교전 시 다리나 팔을 잃게 되는 사고를 당한 선원에게는 그만한 보상을 주고 만약에 본인이 원한다면 배에 남든지 혹은 내리든지 하는 선택권을 주기도 했습니다.
영국 왕실의 반격과 사면 정책
이렇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해적 공화국도 결국 종말을 고하게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 해적 공화국에서 활동하던 해적들 중 한 명인 토마스 베로우가 심한 약탈을 벌이게 되면서 이 소식이 영국 왕실에까지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바하마를 중심으로 자메이카 주변까지 해적질을 벌이면서 영국의 브리스톨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너무나 큰 타격을 입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자메이카의 새로운 총독으로 부임하게 될 니콜라스 로스는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조지 1세에게 청원을 올렸습니다. 해적의 수를 줄이고 자메이카 근처의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 왕실과 영국 해군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완전히 무력으로만 제압하지는 말고 사면권을 주자는 또 다른 선택권도 제시했습니다. 영국 왕실에 항복하면 그동안 지은 죄를 용서해 주고 대신 해적을 그만둬야 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결국 조지 1세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근처 총독이나 해군에 항복하는 해적은 즉시 용서받을 것이며 항복하지 않는 해적들에 한해서만 현상금을 내걸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해적선의 선장들에게만 현상금을 내걸었습니다. 그래서 선원들이 선장을 배신하고 붙잡아 올 경우 선장만 처벌하고 선원들에게는 현상금을 준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포고령을 본 해적선의 선원들이 선장을 배반하게끔 유도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해적 공화국의 몰락과 배신
이 제안은 결국 바하마의 해적 공화국에도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면을 해주겠다는 내용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한 번 해적기를 내걸었던 존재들인 만큼 쉽게 항복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해적 공화국의 사면권을 전달하기 위해 영국 왕실에서 파견한 우즈 로저스가 이끄는 해군이 도착했을 때 상황이 조금 우습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즈의 해군이 바하마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영국 해군과 접촉을 시도했던 해적이 한 명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해적 공화국을 지탱하던 가장 큰 두 세력 중 하나인 벤자민 호르니골드였습니다. 벤자민은 잽싸게 해군에게 접근해 왕의 사면을 받았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사면을 거부하는 해적들을 대신 생포해 달라는 해군의 부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벤자민은 원래 출신 성분부터가 사략선 출신이었기에 즉시 부탁을 받아들이고 동료들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했습니다. 거하게 뒤통수를 준비한 벤자민은 바로 행동에 들어갔으며, 사면을 거부한 해적들 중 10명을 생포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들 중 끝까지 사면을 거부한 9명은 처형되었습니다.
해적 공화국의 큰 축을 담당하던 벤자민이 이런 일을 벌이자 해적들은 무척이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대다수 해적들은 사면권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수만 무려 200명이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생포를 피하고 끝까지 도망쳤던 두 명의 해적은 그야말로 해적들 사이에서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둘은 바로 찰스 베인과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였습니다.
해적 공화국의 종말과 역사적 의미
이렇게 해적 공화국에서 대다수의 해적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바하마는 다시 한 번 안정을 되찾았으며 영국의 통치를 재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해적 공화국의 공식적인 해체는 1718년에 이루어졌습니다. 1706년부터 1718년까지 존재했으니 나름 길게 갔던 편입니다.
말이 좋아 해적 공화국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거대한 아지트나 다름이 없던 셈입니다. 의외로 나름대로 굉장히 민주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개인의 능력만 충분히 받쳐준다면 출신 성분이나 인종 간에 상관없이 선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해적 공화국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유명 영화 시리즈인 캐리비안의 해적에도 영향을 미쳤고, 여러 가지 게임 등에도 존재를 내비쳤으며, 만화 원피스의 작중 내용에도 해적 섬이 등장하는 등 여러 창작물에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끝까지 도망쳤던 해적들인 찰스 베인과 에드워드 티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그 시대의 전설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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