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으로 도시의 단절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대백과]
📌 먼치 POINT
✅ 건축과 소통의 환경
건축 환경은 시민들의 상호작용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탈리아 도시에서는 발코니와 창이 사람들 간의 소통을 도와준 건축적 장치로 기능했다.
한국 아파트는 발코니 확장으로 외부와의 중간 공간이 사라져 소통이 단절된 구조다.
✅ 공공성 부족의 문제
서울은 일상에서 소통하고 경험을 나눌 공유 공간이 부족해 상업 공간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도시의 풍경과 사람 흐름을 단절시키는 물리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의 저층 주거지는 시민 절반이 거주함에도 공공 환경에 대한 계획 없이 난개발돼 왔다.
담장, 주차장, 쓰레기 등으로 황폐화된 거리 풍경은 사람들이 머물고 싶지 않은 도시를 만든다.
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의 남정민 교수입니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했던 의미심장한 말이 있습니다. "보기 싫은 책은 덮어버리면 되고 듣기 싫은 음악은 끄면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집의 맞은편에 있는 흉측한 타워는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공간을 이루고 있는 건축물과 건축물로 이루어진 도시의 공간을 피해서 살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인 서울은 과연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도시 단절에 대한 문제를 건축이 가진 공공성을 통해서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건축이 만드는 소통의 차이
건축은 과연 무엇이고 우리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코로나 팬데믹 때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팬데믹 락다운이 걸린 이탈리아 도시들에서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사람들이 발코니로 나와서 거리를 향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힘든 상황을 이웃과 음악을 통해서 소통하면서 극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펼쳐질 수 있었을까요? 도시 구성원들의 문화적 소양과 행동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건물의 가로와 만나는 경계부, 발코니라는 공간, 창이라는 요소가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 사람들 간의 소통을 도와주었습니다. 즉 사람들의 의지와 행동뿐 아니라 그것을 도와주는 건축 환경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기준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아파트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아파트의 거의 모든 발코니는 발코니 확장을 통해서 실내 공간으로 바뀌어 있고 순수한 사적 공간의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아파트에서는 실내를 외부 공간과 매개해 줄 수 있는 중간 공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실내에 머무르는 동안 외부와 단절되어 소통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앞서 얘기한 이탈리아 도시에서 보여준 소통의 풍경이 펼쳐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건축의 공공성과 필연적 경험
"우리가 건물을 만들고, 그 결과 건물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 이 말은 건축에 대해 널리 알려진 표현 중 하나로, 영국의 수상인 윈스턴 처칠이 했던 말입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우리가 머물고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 살면서 그 건축물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의 삶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와 건축은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개인 소유의 건축물이나 아파트 같은 사적 영역에도 공공성이 있을까요? 건축이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건축은 필연적 경험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장소나 지역에 거주하는 한 우리는 그 공간을 이루고 있는 건축물과 건축물로 이루어진 도시의 공간을 피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문을 열고 집을 나와서 학교를 오가며 마주치는 일상의 공간을 떠올려보세요. 집 근처의 가로변에서부터 대로변의 상업 거리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은 길을 따라 수많은 건물들의 입면으로 이루어진 공간 사이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곳은 공공 영역입니다. 그리고 그 공공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 결국 사유 영역 건축물들의 입면입니다.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이 사는 건물의 안은 함부로 들어와서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건물의 바깥은 피할 수 없이 경험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사유 건축물이라도 필연적으로 공공성을 갖게 됩니다. 즉 개인이 소유한 건물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모여, 우리가 다 함께 공유하는 도시의 공공 영역을 구성하는 일부가 됩니다.
서울의 공공 영역 부족 문제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인 서울은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울이 더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하는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공공 영역의 결핍을 꼽고 싶습니다. 서울에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공의 길이 적고, 공공 영역에서 머무를 의자나 작은 공원, 도서관 등의 공공시설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 책방 같은 상업 공간을 활용해서 공공 영역에서 누렸어야 할 활동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가 만드는 도시 단절
한국의 도시 환경에서 공공 영역이 활성화되지 못한 여러 원인 중 하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입니다. 아파트로 인해 공공 풍경이 단절되고 있습니다.
풍경의 관점에서 보면 조망이 좋고 햇볕이 잘 든 아파트는 그만큼 평가도 좋게 받고 가치도 올라갑니다. 그 결과 층수를 올리고 병풍처럼 펼쳐서 보기 좋은 풍경을 제공하며 거주자들이 선호하는 아파트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다 같이 함께 바라봤던 산천, 혹은 동네 앞길과 같은 공공의 풍경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파트가 늘어나는 만큼 도시에서 공유되던 풍경들은 아파트의 병풍에 막혀버렸습니다. 마치 극장에서 누군가가 본인들만 화면을 더 잘 보기 위해서 일렬로 일어선 형국입니다.
건축의 가장 본질적인 공공성과 연결성에 대한 고려 없이 도시 건설을 진행하다 보니, 한국의 아파트는 도시를 단절시키며 만들어져 왔습니다. 보기 싫은 책은 덮으면 되지만 건축이기 때문에 그럴 방법이 없게 된 상황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파트로 인한 단절된 사람들의 흐름입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일수록 단지 안에 다양한 편의시설과 쾌적한 야외 공간을 제공하여 거주자들에게 선호되는 살기 좋은 아파트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단지의 경계를 따라서 도시와 단절된 가로 세로 수백 미터의 거대한 공백이 만들어집니다.
아파트가 즐비한 거대 단지를 따라 길을 걸으면, 상호작용할 것도 없는 담과 자동차가 가득한 차로 사이의 삭막한 길을 수백 미토 걸어야만 합니다. 아파트 가로변은 사람들이 즐기기 힘든 황폐화된 공공 영역이 되고, 도시는 그만큼 단절됩니다.
결국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는 만큼 사람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며 공동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도시의 공공 영역은 줄어들어 왔습니다.
저층 주거지의 공공 영역 황폐화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공공 영역과의 단절의 문제는 저층 주거지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층 주거지란 간선도로변을 마주한 상업지역 이면에 중저층 주거와 상업이 함께 섞인 건물이 모여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저층 주거지는 생각보다 상당히 중요합니다. 여전히 서울 거주자의 약 48%는 저층 주거지에 살고 있고, 서울에서 차지하는 실질적인 대지 면적도 가장 넓습니다.
하지만 저층 주거지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건물은 작다 보니 아파트나 대형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부 정책이나 건축, 도시 계획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소외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거주 환경이나 공공 편의시설에 대한 배려 없이 난개발이 많이 이루어졌고, 아파트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거주 여건이 낙후된 지역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저층 주거지의 공공 영역은 주로 길과 가로변의 건축물 입면으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건물들이 만들어질 때 건물의 입면과 가로변 경계부에 대한 섬세한 계획 없이 필지별로 제각각 개인적 욕구만 반영해서 이 지역이 조성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저층 주거지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파편화된 가로 경관을 가지고 공공 영역과 단절된 경계부가 조성되면서 가로 공간이 황폐되어 왔습니다.
제도적 문제와 공공 영역 황폐화
공공 영역의 황폐화는 제도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제대로 된 근린공원뿐 아니라 저층 주거지에서 평범한 가로변 조경조차 보기 힘든 것에는 조경 관련 제도의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 저층 주거지의 평균 면적은 약 170제곱미터입니다. 대부분의 저층 주거지 필지 크기는 조경을 해야 하는 최소 필지 면적인 200제곱미터에 못 미칩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저층 주거지 개발에서는 건축물을 짓고 남는 필지의 40%에 해당되는 면적을 조경용으로 쓰기보다는 콘크리트로 덮어서 경계부 사이의 잉여 공간으로 버려지게 됩니다. 건물과 길의 경계부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황량하게 남겨지면서 공공 영역을 황폐화하는 데 일조합니다.
주차장법 또한 저층 주거지 공공 영역 황폐화에 일조합니다.
주차장법은 건축물의 용도에 따라 주차 면적을 개인이 소유한 필지 내에서 확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다 보니 결국 필지 내 지상층에 주차장을 만드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특히 층수에서 면제해 주는 제도적 혜택으로 인해서 작은 땅에서 개발되는 건물의 지상부는 통상 전면 필로티로 1층 전체를 주차장으로 만듭니다. 그 결과 저층 주거지의 공공 영역과 지상부는 주차장으로 둘러싸이며 황폐화됩니다.
결국 저층 주거지의 공공 영역인 길에서는 녹색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콘크리트 바닥과 함께 담장, 주차장, 길에 놓인 쓰레기 봉투 더미들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곳은 소통은 없고 피하고 싶은 풍경입니다. 이곳에서 일상의 공공 공간을 즐기고 산책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동안 도시를 만들면서 함께 공유해야 하는 공공 영역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였고, 공공 영역을 통합적 환경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체계가 부재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처럼 읽히는 공공 영역
그렇다면 서울의 공공 영역은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요?
도시 공공 영역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있습니다. 그중 건축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건물과 길 사이의 경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물이 가로변에 맞닿은 접경지와 건물의 입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경계부위 요소들은 사유 영역에 속하면서 공공 영역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공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와 건축의 공공 영역을 경험하는 것은 책 읽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읽는 책이 넘겨도 넘겨도 빈 페이지만 계속된다면, 혹은 파편화된 단어들이 무질서하게 적혀 있다면 과연 그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까요? 소중히 간직했다가 다시 읽으려고 펼쳐볼까요?
경계부를 통한 도시 공공 영역의 경험도 이와 비슷합니다. 무표정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벽, 보행로에 면해서 아스팔트로 끝없이 펼쳐지는 차도의 풍경, 쓰레기와 주차장만 가득하며 정신없는 건물들의 입면은 앞서 얘기한 읽고 싶지 않은 책과 같은 경험을 제공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곳에 가고 싶지도, 머물고 싶지도 않게 됩니다. 다만 여러분이 사는 도시의 환경이 그렇다면 피할 방법이 없어 겪어야 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방문하고 머물고 싶어 하는 좋은 공공 영역은 즐겁게 읽게 되는 좋은 책과 같습니다. 좋은 책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발견이 이어지면서 계속 그 책을 읽고 싶게 만듭니다.
좋은 공공 영역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이 주변 환경과 소통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바라볼 풍경, 들어가 보고 싶은 가게들, 자연 혹은 사람들과 마주치고 머물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경계부를 따라 일정한 통일감과 함께 조화롭게 배치될 때 계속 책장을 넘기고 싶은 책처럼 좋은 공공 영역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우리가 통상 말하는 도시의 정체성은 길, 광장과 같은 도시 조직과 함께 만들어내는 공공의 장소와 공공의 풍경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수많은 한국의 건축가들이 서울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도 쉽게 대답을 하기 힘든 이유는 서울은 아직 좋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공공 영역을 성공적으로 조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보다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서 우리 삶을 빚어줄 좋은 책과 같은 공공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서울의 다음 과제입니다. 서울의 공공 영역을 개선하기 위해 경계부에서 해법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Created by 고려대학교 Korea University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에디터 최수아
고려대학교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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