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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염원, 수혈의 숨겨진 역사 [고대백과]

목차 📚

📌 먼치 POINT

✅ 수혈의 역사와 발전

  • 17세기 동물 간 수혈 실험에서 출발한 사람 간 수혈은 혈액형을 몰라 실패했다.

  • 1900년 혈액형 발견과 1915년 혈액 보존 기술 도입으로 수혈이 본격 확산되었다.

  • 이후 혈액은행 체계가 구축되며, 수혈은 의료 현장에서 일상적인 치료법이 되었다.

✅ 수혈의 부작용과 인식 전환

  • 수혈은 감염, 장기 손상, 사망률 증가 등 여러 부작용이 발견되며 과신의 위험성이 드러났다.

  • 혈액은 적혈구, 단백질 등 복잡한 구성의 장기로, 면역체계와의 충돌 가능성이 존재한다.

✅ 수혈의 새로운 기준과 방향

  • 수혈을 단순한 생명 연장 수단으로 여긴 인류는 시행착오 끝에 그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 과거 ‘수혈이 생명을 살린다’는 믿음에서 ‘수혈을 줄여야 생존률이 높아진다’는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다.

  • 앞으로는 수혈을 장기 이식처럼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새로운 의료 기준이 되어야 한다.


수혈의 역사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병원에서 정형외과학을 가르치고 진료하고 있는 박종훈 교수입니다.

수혈은 지금도 매 3초당 전 세계 어디에선가 이루어지고 있는 아주 보편적인 치료 방법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류는 수혈을 통해서 건강을 회복하고자 하는 염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피를 수혈받으면 나 또한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과거의 인류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추측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명과 혈액을 동일시하는 인류의 이 염원은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쉽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남의 피를 내 혈관 속으로 집어넣는다는 것은, 지금에서야 보관된 혈액을 혈관으로 찔러 넣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만, 혈액을 보관하는 방법도 몰랐던 과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7세기, 수혈 실험의 시작

1600년대에 들어서서 유럽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수혈에 대한 도전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최초의 시도는 현대의학에서도 그렇듯이 동물에서 동물로 수혈하는 실험이었습니다. ‘리처드 로어’라는 의학자가 최초로 개에서 개로 수혈을 진행했습니다. 지금 밝혀진 바에 의하면 개에게도 여러 가지 혈액형이 있지만, 동물 간 수혈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개에서 개로의 실험을 성공하게 된 리처드 로어는 그 다음 단계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수혈하는 실험을 하게 됩니다. 양의 피를 사람에게 넣어보고, 개의 피를 사람에게 넣어보는 식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폭행과 강간을 저지른 범죄자에게 양의 피를 넣어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의 피를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전혀 양처럼 순해지지 않았다고 하여 이 실험은 실패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인간 간 수혈의 시작과 좌절

어쨌든 인류는 동물 실험에 성공하고 동물에서 사람으로의 실험도 일정 부분 기술적으로는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6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드디어 ‘장 밥티스트 데니스’라는 프랑스 궁정 의사가 사람에서 사람으로의 수혈하는 실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데니스는 사람에서 사람으로의 수혈에 실패하게 됩니다. 사망하는 사람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에게는 서로 다른 혈액형이 있기 때문에 혈액형이 맞지 않으면 수혈할 수 없다’ 라는 것이 굉장히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하지만 1600년대에는 인간에게 서로 다른 혈액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굉장한 난관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데니스가 살았던 프랑스 법정에서 더 이상 사람에서 사람으로의 수혈은 해서는 안 되는 실험으로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프랑스 법정에서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후로 약 150년 정도 이상을 유럽에서는 그 누구도 수혈에 대한 실험을 하지 않게 됩니다.

혈액형 발견과 수혈 기술의 발전

그러다가 1800년대에 들어서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인 ‘제임스 블룬델’이 150년 만에 과거의 실험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과도한 출혈을 통해서 사망하는 산모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임스 블룬델은 죽어가는 산모들에게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해 보았지만, 역시 혈액형의 존재를 몰랐기에 결국은 사망하는 환자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블룬델은 타인의 혈액을 수혈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과도한 출혈을 일으켰던 산모의 피를 모아서 다시 그 산모에게 넣어주는 방식으로 산모를 일정 부분 살렸다는 성과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방법으로 수혈 의학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즉 인류는 건강한 사람의 피를 받는 것에는 실패했으나, 쏟아져 나왔던 자신의 피를 다시 넣어줌으로써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자가 수혈 부분에서는 성공하게 되어 기술적인 면에서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1900년에 드디어 인류는 인간에게는 서로 다른 혈액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병리학자인 ‘란트 슈타이너’라는 사람의 성과였습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수백 년 동안의 염원인 수혈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게 됩니다.

혈액 보관 기술의 발전

혈액형의 발견으로 이제는 안전하게 수혈할 수 있게 되었으나, 문제는 혈액을 보관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병원은 그 주변에 있는 지역 주민들의 혈액형을 전부 다 리스트업한 뒤, 주민들을 순차적으로 1명씩 불러내서 직접 혈관과 혈관을 이어서 수혈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다 1915년 ‘소듐시트레이트’라는 성분을 혈액에 첨가하게 되면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1930년대부터 현대의 혈액은행과 같은 모습의 체제를 갖추게 됩니다.

수혈의 부작용 발견

1900년대 내내 사람들은 수혈이 인류의 생명을 살리는 행위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6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수혈을 받은 환자들에게서 예기치 않은 감염이나 에이즈가 걸릴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혈이 분명히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맞지만, 피를 공급한 사람의 몸에 있었던 바이러스들이 수혈을 통해서 환자들에게 옮겨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2000년대 이후에 수많은 논문과 보고서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논문인 도나스판의 보고서를 인용해보면, 수혈은 당장의 과도 출혈이 일어나는 환자와 신생아를 제외한 나머지 수술에 있어서는, 오히려 감염률이 증가하고 장기와 뇌에 손상을 입히며,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게 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게 됩니다.

혈액의 복잡성과 수혈의 위험성

미국의 외과학회에서 약 22만 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수술 전에 빈혈이 있는 환자는 약 30%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빈혈이 있는 환자는 빈혈이 없는 정상인에 비해서 수술 시 감염률과 사망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혈을 통해서 빈혈을 교정해서 감염률과 사망률을 낮춰보려고 했는데, 수혈을 받은 빈혈 환자들의 감염률과 사망률이 오히려 수혈을 받지 않은 빈혈 환자보다도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혈을 했더니 수혈을 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감염률과 사망률이 높아지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의문이 발생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혈액은 굉장히 복잡한 장기라는 것입니다.
혈액은 단순히 빨간 수액이 아니라,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과 같은 수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고, 거기에 더해서 200여 가지의 단백질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포들이 남의 것이 내 몸에 들어오는 순간 내 몸에 있는 수많은 면역 체계들이 이 타인의 혈액과의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인류는 늘 그렇듯이 수혈의 성공에 눈이 멀어서 혈액이 매우 복잡한 장기라는 것, 그리고 수혈을 통해서 어떠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그리고 수혈을 통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다는 것에 도취되어, 혈액 그 자체에 대한 연구와 우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인류는 이런 식으로 반응합니다. 어떤 것을 발견하면 이것이 이제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알았다는 것처럼 기고만장하는데, 또 한 번 인류는 시행착오를 겪은 것입니다.

과도한 수혈의 문제점

혈액은 우리가 그렇게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며, 우주보다도 더 복잡한 물질입니다. 따라서 수혈이라는 것은 일종의 장기 이식처럼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간과했던 것이 있습니다. 1942년에 ‘아담’과 ‘룬디’라는 사람이 혈액의 약 3분의 1 정도가 빠져나가면 반드시 수혈을 해야 한다는 보고를 했는데, 사실 인류는 혈액의 2분의 1 정도를 잃더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버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인간은 훨씬 더 강하고 복잡하며,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자정력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마치 기계에서 기름이 빠져나가게 되면 기계가 멈추듯이, 인간에게도 혈액이 일정 부분 빠져나가면 사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게 설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재의 수혈 문제점

과거 남의 피를 그대로 받아서 그대로 주는 전혈을 했던 시기에는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수혈을 받았던 병사들의 피를 30년 후에 다시 한번 뽑아보니까, DNA끼리 섞여서 나의 DNA와 속에 남의 DNA를 갖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살리려고 수혈을 해왔는데, 그 수혈을 통해서 인간의 DNA를 갈아서 서로 섞어버리는 오류를 범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이제는 수혈이 인류에게 있어서 꼭 매번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의료진들은 수혈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의료 관행은 지금도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똑같은 수술을 할 때도 어떤 병원은 무려 85%의 환자를 수혈하지만, 어떤 병원은 15%만 수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치료를 함에도 의사들 간에 수혈에 대해서 상당히 다른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수혈 패러다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수혈이 과도하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국제적인 추세를 볼 때 59.3%는 확실히 불필요한 수혈을 하고 있고, 28.9% 정도는 애매하고 불확실한 수혈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약 90% 정도의 수혈이 적절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입니다.

2015년에 깜짝 놀랄 만한 논문이 나왔습니다. '수혈을 줄이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라는 제목의 논문이었습니다. 지난 1세기 동안에 인류의 신념은 '수혈을 통해서 생명을 살릴 수 있다(Blood saves lives)'는 대명제 아래 성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Save blood, save lives'라는 논문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의사들에게 수혈의 가이드라인을 인지시키기만 해도 약 24%의 수혈을 줄일 수 있었고, 수혈을 줄였더니 입원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으며 사망률은 무려 5.5%에서 3.3%로 감소했습니다. 수혈을 줄이는 것이 수술 후 환자의 치료 성적에 훨씬 더 유리했다는 논문이 나온 것입니다.

마치며

이제 새로운 시대에서는 수혈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알고 수혈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에 신중한 수혈을 하는 것이 시대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혈은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헌혈은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Created by 고려대학교 Korea University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에디터 최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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