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10분 완벽 정리
📌 먼치 POINT
피터르 브리헬의 1563년작 ‘바벨탑’은 인간의 교만을 상징하며, 실제 바빌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도시로 수메르인부터 신바벨로니아 왕국까지 번영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 네브카드네자르 2세의 공중정원, 마르두크 신전 등 뛰어난 문명과 건축을 이뤘으나, 과도한 농업과 전쟁으로 쇠퇴했습니다.
바빌론은 문명의 영광과 환경 파괴의 교훈을 함께 전하는 역사적 상징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1563년에 그려진 바벨탑 그림은 16세기를 대표하는 플랑드르 화가 피터르 브리얼의 작품입니다. 현재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이 작품은 높이 114cm, 가로 155cm의 크기로 거대한 건축물과 함께 세밀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바벨탑은 원래 고대 사회 바벨로니아 지방에 있었지만, 브리얼은 이 바벨탑을 자신이 활동하던 지역으로 배경을 옮겨 우뚝 솟은 돌산 위에 바벨탑을 형상화했습니다. 바벨탑의 중축이 기울어져 있는 것은 유명한 바벨탑 이야기에서 말하듯이 인간의 허영과 허무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이 바빌론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메소포타미아 평원, 고대 문명의 발상지
바빌론이 위치해 있던 곳은 현재 이라크에 있는 지역으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으로 유명한 곳인 고대 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 평원입니다. 메소포타미아 평원은 기원전 5천년경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며 보리와 밀을 재배하고 세계 최초의 맥주를 만든 곳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3천년 경에는 수메르인이 정착하여 우르, 키시, 라가시 등의 도시 국가를 건설했고, 시간이 지나 기원전 1900년경에는 바빌론 제1왕조를 세우게 됩니다. 바빌론은 그리스어로 쓰인 역사서에서 등장하는 이름으로, 구약 성서에서는 히브리어인 바벨, 아카드어로는 바벨로 등으로 불렸는데 이 단어들은 '신들의 문'을 의미했습니다.
🪶 함무라비 왕과 바빌론 제1왕조의 전성기
기원전 18세기 바빌론 제1왕조의 6대 왕인 함무라비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대부분을 통일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농업과 물의 이용이 중요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함무라비 왕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얻기 위해 치수 관련 공사에 많은 신경을 쏟았습니다.
함무라비 왕으로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말은 역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법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함무라비의 법전은 단순한 복수법만이 아니라 재산의 임대법, 노동자법, 일상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내용의 법들도 존재했습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에도 상당히 체계적인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홍수가 날 때마다 강의 위쪽으로부터 기름진 흙이 떠내려왔고, 그 덕분에 땅이 아주 기름져 농사를 짓기 좋았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민족이 이곳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영토 분쟁으로 다투기도 했으나, 외부와의 교역과 유통도 활발했습니다. 서쪽 지중해로부터 동쪽 아시아 각지에 이르는 광범위한 교역망에서는 페르시아산의 보석류나 동남아시아산 향신료 등이 유통되었습니다.
⚔️ 민족 간 패권 다툼과 아시리아의 지배
인기가 높은 지역답게 기원전 16세기에 이르러서는 북서쪽에서 철제 무기를 내세운 히타이트인들이 공격해 오면서 바빌론 1왕조는 무너지게 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여러 민족의 패권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기원전 8세기가 될 무렵 히타이트족의 철제 기술을 흡수한 아시리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이집트까지 차지하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아시리아는 대제국을 형성하고 공포 정치로 타민족들을 탄압했습니다. 이때 바빌론 주변 지역에서는 바벨로니아 문화의 후계자로 자처한 칼데아인들이 아시리아 제국에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아시리아에는 전투 경험이 많고 강력한 센나케리브 왕이 있었는데, 그는 즉위 4년 만에 시리아와 페니키아 등의 여러 도시를 점령하고 강대국이었던 이집트의 원군까지 격파했던 전투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빌론은 센나케리브에 의해 철저하게 진압됩니다. 센나케리브 왕은 4km에 달하는 성벽을 쌓고 광대한 왕궁을 건설하며 번영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내분으로 암살당하고, 이후 아시리아 제국에게 탄압당했던 여러 민족이 반란을 일으키며 아시리아는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 신바벨로니아 왕국의 부흥과 네브카드네자르 2세
마침내 칼데아인들은 바빌론을 재건하고 기원전 625년에 신바벨로니아 왕국을 건설하면서 나보폴라사르 왕이 1대 왕에 오르게 됩니다. 신바벨로니아 왕국의 2대 왕은 네브카드네자르 2세로, 그는 국내에 수많은 제도를 정리하며 내실을 다지면서 외부적으로도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습니다.
네브카드네자르 2세는 바벨로니아의 최전성기를 이끌기도 했지만, 가나안을 침공하여 현지의 유대인을 바빌론으로 끌고 오게 되면서 구약 성경에서는 대악당으로 유명합니다. 유대인들을 끌고 온 이 사건을 바빌론 유수라고 하며, 이로 인해 구약 성경에서 바빌론의 이야기가 실리게 됩니다.
바빌론 도시의 구조와 시민들의 생활
신바벨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의 총 면적은 주변 지역까지 포함하여 약 10제곱킬로미터였습니다. 그중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시내의 크기는 5제곱킬로미터의 넓이였습니다. 이 크기는 야구장 100여 개를 합친 크기 정도로 10만 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살았습니다.
바빌론의 도심에는 유프라테스 강이 관통했고, 동쪽에는 티그리스강이 흘렀습니다. 북쪽과 남쪽으로는 성벽이 바빌론을 둘러싸고 있었고, 성벽 위로 난 길은 4마리의 말이 끄는 전투용 마차가 달릴 수 있을 만큼 넓었습니다. 시내에는 이중 성벽에 8개의 문이 있었으며, 도심을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에는 123m에 달하는 벽돌 다리가 있었습니다.
바빌론의 왕궁은 내벽을 세워 남북으로 나뉘었는데, 북왕궁은 성채를 겸했으며, 왕좌가 있는 남왕궁은 왕이 주관하는 재판의 장소였습니다. 남북 왕궁 사이에 있는 이슈타르 문은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했으며 30m 높이의 이중문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바빌론에서 살아간 서민들의 주택은 대부분 단층집이었고, 종종 3층이나 4층 집도 있었습니다. 점토를 햇볕에 말려 구운 벽돌을 이용해 지었으며, 왕궁을 건설할 때는 유약을 발라 광택이 나는 채유 벽돌을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의 생활상은 화폐 경제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일정량의 은을 상품 가치의 기준으로 삼아 물물 교환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시장에서는 식품이나 도기 등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었고,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진 점토판들도 대량으로 출토되었습니다.
🏗️ 마르두크 신앙과 종교적 중심지
바빌론의 중심부에는 마르두크 신전이 세워졌는데, 신전에 딸린 지구라트는 높이 90m의 7층짜리 건물이었습니다. 바벨로니아인들은 우주가 하늘에서 땅까지 여러 층으로 나누어져 있고, 고층의 지구라트는 하늘과 땅을 잇는 상징물이라고 믿었습니다.
마르두크는 바빌론의 수호신으로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원래는 아모리족의 신이었지만 이후 바벨로니아의 주신이 되었고, 수메르의 주신인 엔릴과 합쳐져 벨 마르두크라 불리며 오랫동안 숭배되었습니다. 우주를 창조해 내고 신들의 거처를 정하며 병을 치료하는 등 마르두크는 바벨로니아인들에게 인간과 동식물을 창조해냈다고 여겨졌습니다.
바빌론 제1왕조 시절부터 이어져 온 마르두크 신앙은 오래전 바빌론 제1왕조가 멸망한 후에도 그 세력과 신앙은 쇠퇴되지 않고 심지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 바빌론의 대표 건축물들
바빌론은 인류의 최초 문명 발상지였던 메소포타미아 시절부터 시작해서 바빌론 제1왕조, 아시리아 등을 거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왕국 시절까지도 그 생명력을 보였습니다.
바빌론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빌론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있습니다. 중세 유럽 시절 사람들 사이에 '하늘과 땅 사이에 떠 있는 정원이 있다'라는 전설이 생겼던 바빌론의 공중정원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역대 왕들은 수많은 건축물을 지었는데, 건축물 중에서는 바벨탑을 비롯해 신전과 이슈타르 문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고대 사회 기준 건축 기술의 최고봉으로는 공중정원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쿠푸왕 피라미드와 함께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네브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건설했다고 전해집니다. 높은 계단식 건물에 물을 끌어올리고 테라스에 나무를 가득 심어 만든 정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들 중 유일하게 그 위치가 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은 곳입니다. 그리스의 역사가들이 동양에 대한 환상으로 완전히 신화적인 전설에 불과하다라는 주장도 있으며, 실제로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있었지만 기원 후 1세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오래전 바빌론은 풍요로움의 상징이었으나 수천 년에 걸친 집약적 관개 농업으로 토양의 염화와 사막화가 진행되며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바빌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찬란한 유산을 보여주는 동시에, 환경 파괴가 가져올 수 있는 문명의 몰락을 경고하는 역사적 교훈을 남겼습니다.
바빌론의 이야기는 단순한 고대 도시의 흥망성쇠를 넘어서, 인간 문명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경계해야 할 위험을 동시에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적 자산입니다.
그럼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Created by 지식트리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편집자 최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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