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 문명 10분 완벽정리
📌 먼치 POINT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강 유역에서 발달한 고대 문명입니다.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같은 계획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불에 구운 벽돌 주택과 첨단 하수도 시설, 평등한 주거 구조, 공중 목욕탕 ‘그레이트 베스’ 등 도시 기반이 매우 뛰어났고 무기 흔적 없이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한 것이 특징입니다.
도장을 활용한 무역도 활발했고, 그 흔적이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문명의 쇠퇴 원인은 외부 침입, 기후 변화, 지진 등 여러 가설이 존재합니다.
들어가기 전에
2009년 제작되어 2011년에 개봉된 인도 영화 '세 얼간이'는 3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깊은 고민들을 다룹니다.
'세 얼간이'뿐만 아니라 발리우드라고 불리는 인도 영화는 이미 1990년대 미국보다 2배 이상 개봉 영화를 제작하고 있을 만큼 시장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경제와 문화, 산업 성장이 한창인 인도의 명칭이 유래된 곳, 바로 인더스강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인더스강과 인도 명칭의 유래
인류의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2500년 무렵에 형성되어 기원전 1500년 무렵까지 존재했던 고대 문명으로 발달된 계획도시였습니다.
인더스강의 원래 이름은 산스크리트로 '신두'였다고 합니다. 신두가 페르시아 발음으로 '힌두', 한자로는 '인두'라고 불렸습니다.
영어로 '인디아'라고 해서 인도에는 '인디언'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인디언은 영화 '라스트 모히칸'이나 '포카혼타스'에 나오는 인디언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이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 땅을 인도라고 생각해서 원주민을 보고 인디언이라 부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도에 사는 사람은 인디언, 신대륙의 인디언은 아메리칸 인디언이 되었습니다. 또한 인도인들의 80%가 믿고 있는 힌두교의 어원 또한 인더스강에서 유래했습니다.
현대 인도-파키스탄 분할의 배경
인더스강은 현재 파키스탄에 대부분 속해 있습니다.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까지는 모두 같은 한 국가였습니다.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데, 기쁜 독립을 맞이했지만 같은 국민들 사이에는 갈등의 씨앗이 일어나게 됩니다.
인도 국민회의와 이슬람 동맹이 각각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힘싸움을 했습니다. 인도 하면 비폭력 저항 운동의 간디가 떠오르는데, 당시 간디는 "힌두교든 이슬람교든 무엇이 중요한가, 종교 다툼보다 한 국가 안에서 조화롭게 같이 살아가자"고 했지만 간디는 극단적 힌두교 광신도에게 암살당하게 됩니다.
결국 힌두교를 믿는 인도와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으로 나뉘게 되고, 파키스탄 내부에서는 또다시 언어 문제로 다툼을 하다 결국 서파키스탄은 파키스탄으로,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가 되었습니다.
인더스 문명의 발견과 주요 도시들
인더스 문명은 인류 최초의 문명 중 하나였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 흔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21년 영국의 존 마셜이라는 고고학자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인더스강 유역에서 도시 유적을 약 250여 개나 발견하게 됩니다.
넓은 땅에 걸쳐 발달한 수많은 도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들은 하라파, 모헨조다로, 돌라바라로 전성기에 이 도시 인구는 각각 5만여 명이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 기준에서는 그리 많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중세 유럽 시대 때 가장 인구가 많았던 베네치아와 파리가 15만 내외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인더스 문명의 인구는 상당히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고대 최고의 계획도시, 모헨조다로
인더스 문명 중 가장 유명한 도시 모헨조다로의 성립 연대는 기원전 2300년경으로 추정해 오다가 이후 더 오랜 유적을 발견하게 되면서 현재는 기원전 4천년경으로 추정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920년대부터 고고학팀들은 발굴 및 연구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체 유적의 10% 정도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모헨조다로의 유적은 서쪽 지역과 동쪽 지역으로 나뉩니다. 서쪽 지역은 넓은 회원과 회의장, 목욕탕과 곡물 창고 등 종교와 행정에 관련된 기관들이 있는 성곽 요새 지구라 할 수 있습니다. 동쪽 지역에는 포장된 길을 따라 주거 단지가 모여 있는데 대부분의 집들은 불에 구운 벽돌로 지어졌으며 우물 폐수 시설도 갖추고 있는 시가지구가 있었습니다.
시가지구에 모여 있는 집들의 크기는 집집마다 비슷한 크기로 지어져 주민들 사이에는 빈부 격차가 그리 심하게 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같은 크기의 벽돌로 고층의 주택이 세워졌다는 것은 당시 이 구역이 현대 사회로 치자면 서울시 강남을 방불케 할 만한 도시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4500년 전 최첨단 하수도 시설
인더스 사람들은 이집트 문명의 피라미드 같은 왕을 모시는 무덤을 짓지는 않았지만 다른 문명들보다 훨씬 깨끗하고 잘 정돈된 도시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관리는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깨끗한 편이었는데, 대부분의 가정에는 배수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중앙에서 관리하는 배수 시설과 연결되어 집 안에서 버리는 물과 쓰레기를 도시로부터 지하로 흐르는 하수도로 보냈습니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2500년 정도의 이야기인데, 이때부터 2500년이 지나야 로마 제국에서 하수도 시설이 발달되었지만 이는 고급 주택인 도무스 한정이었던 반면 인더스 문명은 대다수의 집에 하수도가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로 접어들며 하수도 기술이 잊혀지면서 서유럽은 18세기가 되도록 위생은 상당히 안 좋았습니다. 아예 창밖으로 똥과 오줌을 내던지는 현상이 심화되기도 했고, 그 거대한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사례입니다.
성곽 요새에는 커다란 공중 목욕탕이 존재했는데, 길이 10m, 폭 7m에 달하는 공간이 있었으며 그 공간은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계단을 설치해 목욕탕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목욕탕은 목욕이 주요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씻고 나와서 제례를 행하는 장소로 쓰였다고 합니다.
모헨조다로에서 가장 큰 공중시설은 궁전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배수시설의 꽃이자 공중 목욕탕이었는데, 역사학자들은 이를 '그레이트 베스', 즉 위대한 목욕탕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 평화로운 문명의 무역 네트워크
문자 면에서는 이집트 문명은 로제타석의 발견으로 상형 문자와 그리스어가 같이 발견되면서 당시 글자 해독에 접근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인더스강의 사람들도 글은 남겼지만 지금까지 해독이 불가능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인더스 문명에서는 도장이 제작되었는데, 이는 다른 문명과 무역이 이루어지면서 확인증 역할을 했습니다. 단지 이름이 새겨진 도장이 아니라 무소, 코끼리, 나무 등의 여러 모양들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확인증은 인더스강에서만 발견된 것이 아니라 다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되면서 인더스 문명이 당시 무역으로도 얼마나 활발한 지역이었는지를 추정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수메르 유적에서 출토된 것들에서는 인더스 장인이 만든 홍옥수 구슬이라든가 인더스 명문을 가진 인장, 뼈로 된 상감 주상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고학자들이 발달된 인더스 문명 지역을 많은 곳을 탐사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당시에 아주 평화로운 문명을 이루었다는 데 꼽습니다. 발달된 배수 시설로 목욕탕을 만들고 주택 단지 형성을 통해 사람들이 잘 지내는 공간 관리, 다른 문명과의 교류를 통해 더욱 번창하면서도 무기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평화로운 문명을 이룩했습니다.
인더스 문명 쇠퇴의 미스터리
이집트 문명처럼 특정한 누군가를 모시기 위해 거대한 무덤을 만들지 않고 많은 이들이 사이좋게 지내던 인더스 문명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오게 됩니다. 기원전 1750년경쯤부터 이곳도 점점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가설은 세 가지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던 인더스인들은 격동에 휘말리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무기 제작이나 군사를 키우는 데는 다소 등한시하여 카프카스 산맥에서 침공해 오는 다른 지역인들에게 문명이 파괴되었다는 가설입니다.
또 한 가지 가설은 2018년도 미국 우주해양학연구원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인더스 문명 시절도 세월이 흐르며 인더스강 유역의 기온과 기상 패턴 변화에 따라 여름철 몬순 강우량이 점차 줄어들면서 그 구역에서 농경이 어렵거나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자연 환경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설은 거대한 지진으로 인해 강의 흐름을 바꾸게 되면서 많은 지류가 말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이 말라버리니 더 이상 그곳에 정착할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는 가설입니다.
마무리하며
지금으로부터 4천년도 더 오래된 옛날인 기원전 2500년경쯤에 있었던 인더스 문명의 대도시 모헨조다로는 현대 도시 계획의 원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발달된 문명이었습니다. 계획적인 도시 설계, 첨단 하수도 시설, 평등한 사회 구조, 그리고 평화로운 무역 네트워크까지 갖춘 인더스 문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고대 문명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Created by 지식트리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편집자 최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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