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술술과학] 다중우주: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 궁극적 다중우주
📌 먼치 POINT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사실은 초지능 AI나 외부 프로그래머가 만든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는 가설을 들어봤는가?
이 가설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과학과 철학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정보 이론, 홀로그램 이론, 수학적 우주 가설 등은 모두 현실이 물질이 아닌 ‘정보’로 구성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국 우리는 우주의 본질이 수학적 구조라는 다중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정보 집합일 수도 있다.
들어가기 전에
당신이 매트릭스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한 SF 영화의 상상이 아니라, 현대 물리학과 철학이 진지하게 다루는 질문이다.
우리 우주는 사실 하나의 거대한 매트릭스, 즉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닐까?
우리 자신도 현실을 살아가는 실체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의 일부는 아닐까?
우리는 이 삶이 '시뮬레이션'이 아닌 '현실'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우리는 매트릭스를 만든 프로그래머의 도움 없이는 이 현실에서 탈출할 수 없다.
영화는 매트릭스가 가짜라는 것을 깨닫고 AI에 대항해서 싸우는 인간들을 그리고 있지만, 영리한 프로그래머였다면 애당초 그 깨달음마저 전체 시나리오의 일부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프로그래머 자신도 또 다른 매트릭스의 일부는 아닐까?
우주 바깥에 어디선가 프로그래머를 매트릭스에 심어놓은 또 다른 프로그래머가 모니터를 보며 웃고 있지는 않을까?
이것이 바로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다.
만일 우리가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속에 산다면 우리가 원본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은 99.9999%일 것이다.
항상 원본보다는 복제본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복제본의 복제본, 또 그것의 복제본이 존재하듯이 시뮬레이션도 러시안 인형처럼 끝없이 이어진 다중우주를 만들 수 있다.
🌍 정보 이론과 홀로그램 다중우주의 연결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철저하게 비트에 의존한다.
그래서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홀로그램 다중우주와 맞닿아 있다.
존 휠러의 "It from bit(모든 것은 정보로부터 나온다)"라는 개념과 연결되며, 블랙홀의 정보가 사건 지평선의 면적에 비례한다는 것을 밝힌 베켄슈타인의 연구와도 관련이 깊다.
베켄슈타인은 "궁극의 이론은 장이나 시공이 아닌 정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우주를 디지털화해서 0과 1의 조합으로 표현하면 우주 전체의 정보가 10의 100제곱(1구골) 정도일 것이라고 계산했다. 만일 이 정도 크기의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주를 하나 새로 창조한 셈이 된다.
우주의 본질이 정보라는 이야기를 조금만 더 밀고 가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다중우주에 도달하게 된다.
정보가 실체라면 그것이 어떤 식으로 실현되느냐는 부차적 문제다.
모든 가능한 정보 집합을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로 구현할 수 있으며, 하나의 정보 세트가 각각 하나의 우주에 대응하는 셈이다.
맥스 테그마크의 수학적 우주 가설
그렇다면 이는 브라이언 그린이 궁극적 다중우주라고 부른 가능한 모든 우주의 집합이 된다. 우주적 바벨의 도서관인 셈이다.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심지어 이러한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우주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궁극적 다중우주는 더 이상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철학의 영역이고 종교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를 기어코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과학자가 있다. 바로 맥스 테그마크다.
그는 2007년에 발표한 수학적 우주 논문에서 수학적 우주 가설을 도입하고 이를 다중우주 중 최고 레벨인 4레벨로 분류했는데, 사실상의 궁극적 다중우주다.
🌠 3가지 현실의 종류
테그마크에 의하면 현실에도 3가지 종류가 있다.
내적 현실, 합의적 현실, 외적 현실이 그것이다.
내적 현실은 인간의 뇌에 투영된 현실이다.
우리의 뇌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동적으로 투영하는 스크린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편집하는 감독과 같다.
내적 현실은 우리의 뇌가 편집하는 주관적 현실이다.
합의적 현실은 내적 현실 중 우리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교집합에 해당하는 현실이다.
주로 과학적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인간 집단지성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외적 현실은 내적 현실과 합의적 현실의 토대가 되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 칸트 식으로 표현하면 물 자체다.
칸트는 외적 실체가 존재하지만 우리가 인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테그마크는 외적 현실을 인식할 수 있고, 그 인식의 툴이 바로 수학이라고 생각한다.
⏳ 중력의 수학적 구조
테그마크에 따르면 중력은 외적 현실이 아닌 합의적 현실이다.
우리 모두 중력을 비슷하게 경험하고 묘사할 수 있다.
하지만 뉴턴조차 중력이 원거리에서 아무런 매개 없이 작용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테그마크에 의하면 중력의 외적 실체는 휘어진 공간이고, 이것의 수학적 표현이 리만 공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테그마크는 외적 현실이 존재하면 그것은 수학적 구조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수학적 구조가 그 외적 현실을 잘 묘사하거나 설명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학적 구조 자체가 외적 현실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마치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원형 그대로 무덤에서 호출한 것과 같다.
동굴의 우화에는 동굴에 갇힌 죄수가 나온다.
그 죄수는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상태로 불빛을 등지고 앉아 있기 때문에 평생 동굴벽에 비치는 그림자밖에 볼 수 없다.
이 그림자가 바로 테그마크가 말하는 내적 현실이다.
죄수가 머리를 돌려 동굴 전체를 볼 수 있게 되면 그동안 동굴 벽의 그림자를 현실로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죄수들과 함께 동굴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지각하게 되는데, 이것이 테그마크의 합의적 현실이다.
하지만 플라톤에 따르면 진정한 진실은 동굴 밖으로 나가서 태양빛 아래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 즉 진정한 실체의 모습이다.
시뮬레이션 다중우주의 형태
수학적 우주 가설에 따르면 모든 수학적 구조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짜 우주를 서술한다.
그렇다면 수학 자체가 실체고, 우리가 실체라고 느끼는 것은 사실 실체인 수학에 대한 느낌일 뿐이다.
마치 우리가 녹색을 지각하지만 그것의 실체는 555 나노미터 정도의 전자기파인 것과 마찬가지다.
수학적 다중우주가 옳다면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그것의 부분집합이다.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수학적 다중우주 중 계산 가능한 함수만으로 이루어진 우주이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려면 기본적으로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 우주는 거대한 컴퓨터, 혹은 아기우주다
다른 관점으로는, 우주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로 보는 관점이 있다.
세스 로이드에 의하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양자 컴퓨터다.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만물은 그 컴퓨터가 계산하고 실행하는 시뮬레이션이다.
리 스몰린의 블랙홀 다중우주도 특이한 버전 중 하나다.
이에 따르면 블랙홀은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키는 일종의 아기우주다.
블랙홀 아기 우주는 우주 상수 등의 중요한 특징을 엄마 우주로부터 물려받는다.
마치 DNA가 후손에게 전달되듯이 블랙홀에 담긴 정보가 아기 우주에게 전달된다.
우주적 진화와 정보 전달자로서의 존재
인플레이션 다중우주에는 최초의 양자요동이, 끈이론 다중우주에서는 여분 차원이, 홀로그램 다중우주에서는 경계면의 2차원 정보가, 시뮬레이션 다중우주에서는 프로그래머의 다양한 기획이, 블랙홀 다중우주에서는 블랙홀 자체가 우주적 DNA 역할을 한다. 그 DNA의 사소한 변이가 우주적 다양성의 원천이 된다.
궁극적 다중우주에서는 급기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우주가 된다.
이러한 우주적 다양성이 없었다면 우리와 같은 복잡한 생명도 없었을 것이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을 DNA를 전달하는 생존 기계로 표현한 것처럼, 우리 우주에서도 정보가 실체고,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물의 본질은 정보 전달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종 입자는 입자나 양자도 아니고, 끈이나 브레인도 아니고 궁극의 비트일지도 모른다.
마무리하며
이에 대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우리의 존재는 비록 미미하지만 우리의 정신 속에 이미 우주의 위대한 섭리가 각인되어 있지 않은가.
13세기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 루미는 이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만일 우리가 시뮬레이션 다중우주에 산다면, 파스칼의 충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우리는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를 믿든 안 믿든 아주 열심히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혹시라도 우리를 창조한 프로그래머가 따분해서 스위치를 끄지는 않을 테니까.
Created by 카오스 사이언스 @KAOSscience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편집자 최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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