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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술술과학] 뉴런, 도대체 왜 이렇게 생긴거야? | 카오스 브레인 오디세이

목차 📚

📌 먼치 POINT

뇌는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할까? 이 물음의 출발점은 단 하나의 세포, 뉴런이다.
19세기 스페인의 뇌과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미세한 신경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손으로 그림을 그려내며 뇌과학의 문을 열었다. 그의 이론은 뇌가 독립된 세포로 구성된다는 ‘뉴런설’이었고, 이는 신경이 그물처럼 이어져 있다는 기존 ‘망상설’과 치열한 대립을 이루었다.
이 글은 카할과 그 이후의 과학자들이 어떻게 뇌를 바라보며 오늘날의 커넥톰 이론에 이르렀는지를 따라가며,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안내한다.

들어가기 전에

19세기 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뇌의 기본 단위가 '뉴런'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며 당시의 신경망 이론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는 3천 점이 넘는 신경세포 그림을 남기며 뇌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후 뉴런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학습과 기억을 담당한다는 이론이 발전했고, 뇌는 독립된 세포이자 연결된 시스템이라는 이중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 연결망은 ‘커넥톰’으로 불리며, 인간의 사고와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떠올랐다.
모든 생명체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대부분의 세포는 둥글지만, 뇌의 신경세포는 마치 노끈이나 밧줄처럼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도대체 이 이상한 모양의 세포는 어떤 일을 하기에 이렇게 생긴 것일까? 뇌는 우리가 탐구하는 동시에 탐구의 주체이기도 한, 유일한 존재다.


최초의 뉴런

19세기 후반 이러한 신경세포를 최초로 연구한 스페인의 신경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는 그림 실력도 출중해서 다양한 신경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후 이를 3천 점이 넘는 그림으로 남겼다고 한다.
당시 독일의 한 해부학자가 이를 라틴어로 밧줄이나 힘줄을 나타내는 '뉴런'이라 명명했다.

🧠 뇌과학의 아버지,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카할은 뉴런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일종의 생체 전깃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러한 전기 신호가 외계인 머리처럼 생긴 수상돌기라 부르는 곳에서 소시지를 이어 붙인 것처럼 생긴 축삭돌기 쪽으로 흐를 것이라 추측했다.
여기서 수상돌기나 축삭돌기는 그 지름이 1마이크로미터, 머리카락 지름의 50분의 1도 안 되는 매우 가는 전선이다.
하지만 그 길이는 천차만별이라 다리에 있는 신경의 경우는 척추의 꼬리 부분에서 발가락까지 그 길이가 1m가 넘는 것도 있다.
뉴런이 이렇게 생긴 것은 모두 전기 신호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뉴런은 정보 전달을 위해 최적화된 신경세포이며, 천억 개의 뉴런이 모여 있는 우리의 뇌는 말 그대로 정보 처리 장치이다.
감각기관에서 입력된 정보를 처리해서 다양한 운동기관으로 내보내는 신경세포들의 집적 회로인 것이다.

이러한 뉴런에 관한 기본 사실들을 밝혀 뇌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 바로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이다.
당시 그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이 뇌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날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랑하려고 카할 교수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뇌를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이를 듣고 카할이 대답했다.
"나쁘지 않네요. 그런데 보여드릴 그림이 몇 장 있는데 시간을 내서 마드리드에 좀 내려오시면 어떨까요? 그걸 보시면 신께서 창조하려고 하는 뇌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신이 카할의 그림을 보고서도 인간의 뇌를 창조했을까? 심히 의심스럽다.


20세기 초 뇌과학계의 대논쟁: 뉴런설 vs 망상설

지금의 우리는 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뉴런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뉴런의 존재 여부가 논쟁의 핵심이었다.
당시 최고의 뇌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2명의 과학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할이 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뉴런이라는 소위 뉴런 독트린을 주장한 반면, 역시 당대 최고의 해부학자였던 카밀로 골지는 뇌는 뉴런과 같은 단일 세포들의 집합이 아니라 마치 그물처럼 얽혀 있는 네트워크 구조라는 신경그물설을 주장했다.
뉴런설망상설의 대충돌이었다.
재미있게도 골지와 카할은 19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는데, 수상 연설에서도 이를 놓고 심하게 다퉜다고 한다.
이 둘의 싸움은 당시 뇌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던 2가지 사고 방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는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논쟁의 주제였는데, 바로 부분전체의 문제였다.


부분과 전체: 환원주의 vs 반환원주의

뇌의 활동을 뇌의 원자라 할 수 있는 뉴런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데, 조금 유식한 말로 하면 환원주의 논쟁이다.
19세기 원자설과 세포설 등이 차례로 발표되면서 과학계에는 부분으로 전체를 설명하려는 환원주의적 경향이 득세했고, 뉴런설도 그런 트렌드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부분이 모여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면 원래는 전혀 없었던 성질이 나타날 수 있다는 반환원주의적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복잡한 네트워크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실 간단한 분자만 생각해도 원래의 원자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질 수 있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는 경우만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논리다.
뇌와 관련해서는 이를 국소주의분산주의 논쟁이라고도 한다.
뇌에는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게 국소주의, 전체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여러 가지 역할을 분담한다는 게 분산주의다.
부분을 대변하는 게 국소주의, 전체를 강조하는 게 분산주의인 셈이다.


골상학의 흥망성쇠

국소주의의 본격적 출발은 18세기 말 프란츠 갈의 악명 높은 골상학이었다.
얼굴을 보고 운명을 점치는 관상과 마찬가지로 두개골의 모양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과 지능을 알 수 있다는 건데, 이는 뇌가 부위별로 다른 기능을 한다는 국소주의적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골상학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머리가 큰 사람이 지능이 높고 안구가 튀어나온 사람이 기억력이 좋다는 등 뇌가 발달해서 돌출한 부분을 보고 어떤 성격과 능력이 발달했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성실함과 책임감을 담당하는 부위도 있고, 심지어 지조 있는 사랑, 공산주의적 경향, 형이상학적 소양 등을 나타내는 뇌 부위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한 골상학자는 나폴레옹의 뇌의 질서 기관이 유난히 발달해서 프랑스를 혼돈에서 구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프란츠 갈은 심지어 뇌 상만으로도 그 사람이 천재가 될지, 냉혹한 살인자가 될지 알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한다.
이런 국소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신경학자 폴 브로카가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부위인 브로카 영역을 발견함으로써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브로카도 갈처럼 지나치게 골상학을 신봉하여 심지어 인종 간 차이나 남녀 간 차이마저 뇌의 겉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 과학자로서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
재미있는 사실은 프란츠 갈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뇌의 무게를 측정했는데, 그가 머리가 나쁘다고 무시했던 여성들의 평균 뇌 무게보다 가벼웠다고 한다. 머리가 나빴으니 그가 창안한 골상학이 제대로 된 연구였을 리 만무하다.


네트워크 사고의 기원

물론 그 이후 카할이 제창한 뉴런설은 골상학과는 격이 다른 제대로 된 과학의 틀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국소주의적 전통을 은연중에 따르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카할과 골지가 노벨상을 수상했던 20세기 초는 앞서 언급한 폴 브로카의 언어 중추 외에도 시각 중추, 청각 중추, 운동 중추 등이 차례로 발견됨으로써 누가 봐도 국소주의의 승리로 보였다.
국소주의 논리에 따르면 소위 할머니 뉴런도 존재한다. 우리가 할머니를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별도의 뉴런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뇌 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카할이 옳았다고 해서 뇌의 기능 면에서도 국소주의적 생각이 옳았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소주의적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를 골지의 신경 그물망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망상설 또는 분산주의의 끈질긴 저항은 그 뿌리가 오래되었다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다. 

🔬 토마스 영의 파동설

이러한 반환원주의적 전통은 그보다도 약 100년 전인 19세기 초 빛의 파동설을 확립한 토마스 영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뉴런설과 망상설의 논쟁은 마치 물리학에서의 입자설과 파동설의 논쟁을 연상시킨다.
17세기 후반 뉴턴은 빛의 본질이 입자라고 주장했고, 18세기 초 토마스 영은 이중 슬릿 실험으로 빛이 파동임을 입증했다.
토마스 영은 박학다식한 만물 박사로도 유명했는데, 그의 전기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던 마지막 인물, 다른 천재적 업적들 중에서도 빛의 본질에 대해 뉴턴이 틀렸음을 입증한 박식가이자 우리의 시각을 설명하고 병자를 고쳤으며, 로제타석을 해독한 사나이."

그는 빛의 대가였던 만큼 빛을 인지하는 시각에도 관심이 많아 1802년 색채 시각의 삼원색설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빛의 파장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색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각각의 색깔을 지각하는 세포도 무한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망막에는 색을 지각하는 세 종류의 감각 세포만 존재하고 마치 삼원색을 섞어 다른 모든 색을 만들 수 있듯이 이 세 종류의 색깔 지각이 서로 중첩되어 다양한 색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망막에 있는 전체 시각 세포가 모두 협력하여 하나의 색을 지각한다는 아이디어다.
마치 카할이 뉴런의 모양만으로 이를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일종의 전깃줄로 해석했듯이, 영은 빛의 파동설을 토대로 뇌의 색깔 지각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추론했던 것이다.
빛이 파동이든 인간의 뇌도 색을 입자로서가 아니라 파동으로 인식한다는 아이디어였으며, 이는 옳은 것으로 입증되었다.
당시 기술로는 이를 뒷받침하는 관찰이나 실험이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생각만으로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으니 역시 천재는 뭔가 달랐다.


현대 뇌과학의 통합적 관점

이러한 영의 생각이 이후 카밀로 골지 등의 망상설로 이어진다.
비록 카밀로 골지는 뉴런이라는 신경 원자를 부인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오류를 범했으나 네트워크라는 아이디어는 전체적으로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1940년대 말 캐나다의 심리학자 도널드 헤브는 뇌 활동의 기본 단위가 개별적인 뉴런이 아니라 뉴런이 서로 연결된 패턴, 즉 신경회로망임을 밝혔다.
그는 하나하나의 뉴런이 아니라 뉴런의 네트워크가 변하는 것이 학습이고 그 변화가 지속되는 게 기억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양자역학이 확립되면서 빛은 입자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20세기 뇌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뇌라는 복잡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뉴런설망상설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뇌 구조의 기본 단위는 뉴런이지만 활동의 핵심은 네트워크인데, 이는 우리가 개인이면서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유사하다.
뇌의 각 부위는 각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힘을 합쳐 함께 일한다.
양자역학적 미시계의 확률적이고 불확정적인 기반에서 만물이 출현하듯 신경계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매트릭스 위에서 지각이나 기억뿐 아니라 자아나 의식과 같은 고차원적 현상이 떠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커넥톰: 나를 결정하는 뇌의 지도

이처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 가장 복잡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인간의 다.
우리의 뇌에는 1천억 개에 달하는 뉴런이 있고, 각각의 뉴런은 다른 뉴런과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1만 개에 달하는 연결 부위를 갖고 있다.
뉴런끼리의 연결 부위를 시냅스라고 하는데 그 시냅스의 수가 수백 조에 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신경세포의 연결망 전체를 커넥톰이라 한다. 마치 유전자 하나하나를 유전자라고 하고 전체를 게놈이라고 하듯이 뇌 연결의 전체 지도를 커넥톰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 커넥톰이야말로 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나는 나의 게놈보다 위대하다. 나는 나의 커넥톰이다." 세계적인 뇌과학자 세바스찬 승 교수의 말이다.


마무리하며

이처럼 인간의 는 그 자체가 하나의 복잡계이고 카오스다.
우주 최대의 수수께끼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라면 이 작은 핑크색 덩어리는 그 자체가 우주적 미스터리다.
우리 하나하나의 뇌를 소우주에 비유한다면 인류 전체의 집단 지능은 그야말로 다중 우주의 향연이다.
20세기에는 우주를 정복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었다. 21세기는 뇌를 정복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
그래서 20세기의 상징적 코드가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면 21세기는 브레인 오디세이다.

그래서 카오스 뇌 시리즈의 제목을 카오스 브레인 오디세이로 명명했다.
여기에는 앞서 얘기한 뇌과학의 선구자 카할이나 골지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쥘 베른의 SF 걸작 해저 2만리도 한몫했다.
해저 2만리에서 2만리는 대충 8천km지만 원제에서의 2만리그는 10만km 정도고 오차는 있지만 한 인간이 갖고 있는 뉴런을 몽땅 한 줄로 세우면 대략 이 정도 거리라고 한다.
또 2003년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의 주인공 이름 니모는 해저 2만리의 네모 선장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카오스 브레인 오디세이는 뇌를 찾아서 함께 떠나는 뉴런 2만리의 멋진 여행길이다.
그 길에서 만난 멋진 사람들, 재미있는 얘기와 사건들, 놀랍고 신기한 풍경들을 글로 전하겠다.



Created by 카오스 사이언스 @KAOSscience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편집자 최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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