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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여객기 역사상식 8분 정리

지식트리2025.06.09
목차 📚

📌 먼치 POINT

비행기는 라이트 형제의 동력 비행기 개발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세계대전은 항공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비행기가 우편 수송 중심에서 여객 운송으로 확대되었고, KLM 같은 항공사가 설립되며 본격적인 상업 항공 시대가 시작됩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부드러운 비행과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행선이 여객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힌덴부르크 호의 폭발 사고로 비행선 시대는 종말을 맞습니다.
이후 항공기는 제트 엔진의 도입과 함께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며 여객 운송의 중심이 되었고, 1970년대에는 대형 항공기 시대가 열리면서 세계인의 이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하늘을 날겠다는 인류의 오랜 꿈은 기술의 진보와 함께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상상 이상으로 긴 여정과 도전이 필요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비행기의 기원과 경쟁,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전 세계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따라갑니다.
비행선과의 치열한 경쟁, 전쟁을 통한 기술적 진보, 항공사 설립과 승무원 제도의 변화 등은 단순한 기술 발명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욕망, 경제, 정치가 어떻게 비행이라는 도전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최초 비행기 발명을 둘러싼 논쟁들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실현시킨 최초의 사람으로는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유명합니다.
그들은 동력 비행기의 조건을 충족시키며 플라이어 1호를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보다 10년은 더 앞서 비행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국가도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크레망 아들이 증기 기관을 이용해 최초의 비행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미국과 프랑스는 서로가 최초의 비행기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크레망 아들의 증기 기관에 비해 라이트 형제의 경량 가솔린 엔진이 후대의 비행기 발전에 더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최초로 비행기를 만들었다는 국가는 미국과 프랑스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조선이 최초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서 사용되었다는 비거라는 무동력 비행기 기록이 있는데 글이라는 기록 형태만 남아 있고, 설계도와 실물에 대한 자료가 없어 설득력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세계대전이 가져온 비행기술의 혁신

지금으로서는 현대 비행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최초의 비행기는 경량 가솔린 엔진을 이용한 라이트 형제의 발명으로 보고 있으며, 이후 비행기 대회를 개최하며 비행 기록은 상승하고 있었으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해 비행기 연구에 더욱 열을 올렸고, 이로 인해 비행기의 성능이 급속히 발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초반에는 지상에 붙어 다닐 만큼 낮게 날면서 속도도 느렸지만 적군과의 경쟁을 통해 발전된 비행기들은 전투기와 폭격기 형태가 되면서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속도도 빠른 비행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비행기들은 크기도 작고 안정성의 불확실성 때문에 비행기에 승객을 태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전쟁을 거치면서 기체의 안정성은 좋아지고 있었지만 아직은 민간에서 일상적으로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상용 항공의 시작 

🛫 비행기의 시대가 열리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대에 접어들 무렵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비행기의 상용화가 이루어졌는데 아직은 사람을 싣고 다닌다기보다는 우편물 수송이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항속 거리도 머나 먼 국가까지는 무리였고 지중해 정도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로서는 바다를 날아서 건넌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상업 형태도 발전시키며 이때 당시에 네덜란드에서는 항공사 KLM도 탄생했습니다.
유럽 여행을 다녀본 분들이라면 자주 봤을 네덜란드 항공사 KLM은 1919년에 창립 당시 빌헬미나 여왕에게 왕립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 선수가 KLM을 자주 이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초기 승무원 서비스

KLM은 1935년부터 승무원을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야 비행기에서는 항상 친절한 승무원들이 서비스 근무를 하고 있지만 1930년대만 하더라도 승무원 고용은 항공사에 있어 새로운 도약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화된 방송은 없었던지라 승무원들이 직접 비행 경로와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고, 아직은 승객들이 소수에 불과한 시대라 기내에서 승객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특히 비행기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승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자 승무원인 경우는 취업 지원할 때 간호직 경력이 있으면 가산점이 부과되기도 했습니다.
여객기의 초기 승무원들은 지금처럼 전 세계의 대륙에 모두 다니지는 못했습니다. 그 시대는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가 많았던 시대여서 여자 승무원들은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 식민지로 가는 항로에서는 근무하지 못했습니다.
여자 승무원들은 유럽 노선 전담으로 배치되었고, 남자 승무원들이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인도네시아에 전담되는 형태였습니다.


하늘을 누가 지배할 것인가: 비행기 vs 비행선

🎈 초창기 비행기의 한계와 도전

사람을 수송하는 여객기가 활성화되기 전에 비행기들은 모두 금속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들은 골조 뼈대와 동체는 나무로 되어 있었고, 피복 겉 덮개는 그림 그릴 때 쓰는 캔버스로 이루어졌습니다. 목재로 만든 비행기의 장점은 총에 맞았을 때 수리하기가 용이한 점이 있었으나 단점은 비에 노출되면 나무가 썩어버리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KLM, 미국에서는 시애틀에서 창립한 보잉사, 러시아에서는 투폴레프라는 여객기의 경쟁이 치열했지만,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항공 여객기의 주류는 비행기가 아니었습니다. 

✈️ 비행선의 전성기와 매력

독일에서는 국내 여객과 우편용으로 인기가 많았던 비행선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사용되는 힘은 날개의 바람을 맞게 하여 양력을 일으키는 데 반해 비행선에서는 양력을 생성하지 않고 공기를 데워 부력을 일으켜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기구랑 같은 원리인데 추진과 조정 장치가 있으면 비행선이었습니다.
비행선의 단점은 아무래도 속도가 느렸습니다.
그 시절의 자동차나 배보다는 빠른 속도지만 비행기와 비교하자면 거북이 수준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 초창기 시절의 속도는 시속 300-400km였는데, 비행선은 시속 100km 내외였습니다.
시속 100km도 느린 속도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늘에서의 체감은 거의 정적인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시대 여객의 주류는 비행선이었는데, 그 이유는 여객용으로 사용된 비행기의 탑승 환경이 최악이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기본적으로 귀마개를 하나씩 받았는데, 이는 너무 큰 엔진 소리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은 인증샷으로도 많이 활용되는 기내식은 없었던 시대였으며, 오히려 기체가 크게 흔들리는 바람에 멀미를 심하게 하는 손님들이 많아 승무원들은 구토용 봉지를 챙겨서 승객들의 토를 받아냈습니다.
이에 반해 비행선은 안정성 있는 속도와 별로 흔들리지 않는 움직임 덕에 객실과 침대는 물론이고 샤워실까지 갖춰져 있었으니 더욱 인기가 높은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처럼 아주 높은 고도가 아니라 지상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야 덕에 잘 차려주는 정찬을 먹으며 여행 분위기도 한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힌덴부르크 사고와 비행선 시대의 종말

하지만 비행선의 인기는 1937년 힌덴부르크 사고로 종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힌덴부르크 비행선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 참모총장 출신의 독일 대통령 힌덴부르크 이름에서 따온 비행선이었습니다. 참고로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비행선은 체펠린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거대하고 화려한 비행선이었고, 꼬리 쪽에는 하켄크로이츠를 부각시켜 나치를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나치 독일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었던 최고급 수소 비행선은 평소 유럽에서 미국까지 왕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착륙 예정지였던 곳에 비가 세차게 내리면서 비행선의 거피를 감싸고 있던 가죽이 젖어 힌덴부르크의 무게가 증가했고, 동시에 바람까지 심하게 불면서 내부에서 스파크가 발생해 수소 기체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발했습니다.
이 폭발은 34초 만에 일어나게 된 사건이었으며, 수소는 아주 조그마한 스파크에도 큰 폭발이 일어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이로 인해 비행선은 여객 산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음모설로는 미국이 유일하게 헬륨을 수출하는 국가였는데 나치를 반대하는 움직임으로 수출길을 막으며 미국이 이 사고를 사주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비행기 기술을 더욱 발달시켰으며 1949년 세계 최초의 제트 여객기 코맥이 첫 비행을 마치게 됩니다.
1950년대부터는 제트 여객기의 시작으로 여객기 시장이 크게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보잉사 747의 대형기를 필두로 대형 여객기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비행기로 교통 산업이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건 이러한 과정을 겪어온 비행기의 발전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Created by 지식트리 @G_seektree  
CC BY 라이선스 / 교정  SENTENCIFY / 편집자 최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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