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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ilders 3화] 15달러로 시작해 10억 달러를 벌게 된 도미노피자 사업가 톰 모나한 이야기 🍕

목차 📚

📌 먼치 POINT

  1. 끝없는 좌절 속에서 피어난 기업가 정신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란 톰 모나한은 최하위 성적, 대학 입학 실패, 전 재산을 사기로 잃는 고난을 겪었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단 15달러로 미시간까지 히치하이킹하며 돌아온 그는 피자가게 하나에서 다시 도전을 시작했다.

  2.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혁신의 씨앗
    1960년 형제와 함께 인수한 작은 피자 가게 ‘도미닉스’는 매출도 없고 동생까지 떠났지만, 톰은 무료 배달, 특수 박스, 30분 배달 보장제 등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위기를 돌파했다. 그가 만든 배달 시스템은 대학생들을 사로잡으며 도미노스의 성장 기반이 되었다.

  3. 성공 이후의 전환과 도전, 그리고 유산
    가파른 성장 끝에 야구팀 인수와 해외 진출을 이룬 그는 결국 도미노스를 매각하고 자선과 교육에 헌신했다. 아베마리아 대학을 세우며 “성인을 만드는 공장”을 꿈꾼 그의 철학은, 단순한 피자 이상의 가치를 남겼다.


마지막 15달러로 시작한 억만장자의 여정

마지막 15달러를 들고 샌디에고에서 미시간까지 히치하이킹을 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는 미국 기업가 정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가 일구어낸 사업은 오늘날 90개국 이상에서 1만 78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35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하는 세계 2위의 피자 체인으로 성장했습니다. 피자헛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 기업의 연간 매출은 1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도미노스 피자의 시작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난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

1937년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근교의 앤아버에서 태어난 토마스 스티븐 모나한의 어린 시절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처럼 불행으로 가득했습니다. 겨우 4살이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버지를 잃었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간호 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톰과 동생 제임스를 펠리시안 수녀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맡긴 것이죠.

고아원에서의 생활 ⛪️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어린 톰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녀들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되었고 신부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의 장난기 많은 성격은 신학교에서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베개 싸움을 하고 예배당에서 떠들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했고, 일반 고등학교로 돌아와서는 44명 중에 44등이라는 최하위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1955년 졸업 앨범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할수록 더 나빠지는 것 같지만 언젠간 대단한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
이런 학창 시절을 보낸 톰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렵고 성적도 좋지 않아 진학이 어려웠습니다.


연이은 좌절과 실패의 순간들

결국 그는 군대에 입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의 불운은 계속됩니다. 육군에 지원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해병대를 지원한 것이었습니다. 해병대에서의 3년은 톰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규율과 질서를 배웠고 열심히 저축도 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또 한번 시험했습니다. 석유 사업가라는 사기꾼을 만난 것이죠. 그는 톰의 전재산을 '확실한 유전 투자'라며 가로챘고, 톰은 단 15달러만을 손에 쥔 채 샌디에고에서 미시간까지 히치하이킹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톰은 다시 한 번 대학에 도전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총 6번이나 대학에 입학했지만 매번 1학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 그의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도미노스 피자: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혁명

동생 제임스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도미닉스 피자라는 작은 가게를 함께 인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는 전 재산을 털고 추가로 돈을 빌려 이 가게를 샀습니다. 처음에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톰은 매주 100시간이 넘는 시간을 일했지만 수익은 나지 않았습니다.
6개월이 지나자 동생 제임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그가 가져간 것은 배달용으로 쓰던 낡은 1959년식 폭스바겐 비틀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연 매출 100억 달러가 넘는 기업의 50% 지분을 포기한 셈이죠.

계속되는 상황 악화 😭

혼자 남은 톰은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가게는 계속 적자였고, 그는 타버린 피자와 오래된 팝콘으로 끼니를 떼워야 했습니다. 결국 집세를 내지 못해 집까지 잃었습니다. 하지만 1986년 그가 쓴 자서전 '피자 타이거'에는 이 시기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그것은 분명 후퇴였지만 나는 담담히 받아들였고 낙관적이었다. 나는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피자맨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 사업의 성공과 실패가 오직 나 하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혁신적인 피자 배달 시스템의 탄생

이 시기에 톰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업을 지켜 나갔습니다. 피자 값을 내지 않은 손님들에게는 경찰을 부르는 대신 직접 찾아가 해결했고, 주차된 차에서 피자를 훔치는 이들을 잡기 위해 차 뒤에 숨어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고기 분쇄기를 들고 다니며 위협하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써가면서 사업을 지켜 나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전환점은 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로서 전례가 없던 무료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죠. 대학가의 학생들은 이 서비스를 열광적으로 환영했고,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1965년 그는 가게 이름을 도미노스 피자로 바꾸고 본격적인 확장에 나섰습니다.

혁신의 시작 🚩

톰은 피자 배달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했습니다. 피자를 만드는 시간을 초 단위로 줄이기 위해 노력했고, 재료를 단순화했습니다. 특히 그가 개발한 새로운 피자 박스는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이 박스는 피자를 따뜻하게 유지하면서도 여러 개를 쌓을 수 있어 한 번에 많은 양의 피자 배달이 가능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혁신은 30분 배달보장제였습니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피자가 차갑게 식고 맛이 없어진다면 의미가 없다"는 그의 신념에서 시작된 이 정책은 도미노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빠른 배달을 독려하기 위해 가장 많은 현금을 수금한 배달원에게 보너스를 주는 제도도 도입했습니다.


도미노스의 성장과 위기 극복

이러한 성장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1969년 매주 1개씩 새로운 매장을 여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이는 실패했습니다. 무리한 확장으로 수백만 달러의 빚을 지게 되었고, 파산을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회사 통제권을 넘겨야 했습니다. 다행히 1년 만에 회사를 되찾았고 이를 교훈 삼아 더욱 신중하게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평생의 꿈을 이루다 ⚾️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성장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83년에는 1천 번째 매장을 열었고, 이를 기념하여 평생 꿈이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야구팀을 3500만 달러에 구입했습니다. 놀랍게도 다음 해에 타이거스는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80년대 말에는 미국에서만 5천 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하게 되었고, 해외 매장도 260개가 넘어섰습니다. 사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톰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성공 이후: 자선사업과 새로운 도전

1989년 그는 도미노스의 사장직에서 물러나 가톨릭 자선 사업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1992년에는 신앙의 재각성을 경험했고, 1998년에는 도미노스의 지분 93%를 10억 달러에 매각하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의 새로운 꿈은 교육이었습니다. 아베마리아 대학교를 설립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단순한 학위 공장이 아닌 성인을 만드는 공장을 원한다."
그는 대학교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 재산을 투자했습니다.


톰 모나한의 유산과 도미노스의 현재

고아원에서 자란 소년, 최하위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 6번이나 대학에서 실패한 청년, 마지막 15달러를 들고 히치하이킹을 했던 청년. 그가 이룬 성공 후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남깁니다. 기회가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면 직접 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도미노스는 창업자가 떠난 직후에도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주문 시스템을 도입하여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온라인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전체 주문의 절반 이상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톰 모나한이 시작한 작은 혁신, 피자 배달이라는 아이디어는 이제 전 세계 음식 배달 산업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의 여정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끈기와 혁신으로 성공을 이루어낸 진정한 기업가 정신의 표본입니다.



Created by 엔퍼 @npermovie
CC BY 라이선스 /교정 by SENTENCIFY / 편집자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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