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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박물관 4 : 대만 타이베이 국립 고궁 박물원 역사

지식트리2025.04.25
목차 📚

📌 먼치 POINT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은 중국 왕조의 유물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전쟁과 내란을 견디며 오늘날까지 이어진 박물관입니다. 자금성에서 출발해 난징, 상하이를 거쳐 대만에 안착한 유물들은 대만에서 다시 꽃을 피웠고,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남부분원까지 확장하며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세계에는 수많은 박물관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이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입니다. 이 박물관은 단순히 전시물이 많은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중국 8천 년의 역사와 문화, 예술, 정치의 흐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살아있는 역사서와도 같은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 박물관이 왜 대만에 있을까요? 자금성의 유물이 왜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그 사연에는 전쟁, 망명, 혁명, 그리고 한 나라의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대만의 자부심, 국립고궁박물원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프랑스의 루브르,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은 8천 년에 걸친 중국 역사를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문화기관입니다. 이름이 ‘미술관’이 아닌 ‘박물원’인 이유는 단지 미술품에 국한되지 않고, 당·송·원·명·청 오대 왕조에 걸친 서화, 도자기, 칠기, 조각, 금속공예, 규화보석 등 다양한 문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 69만 건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이처럼 방대한 유물들은 한 번에 전시할 수 없어, 3개월마다 특별전을 열어 순환 전시를 진행합니다. 이 때문에 박물관을 자주 방문할수록 새로운 전시를 감상할 수 있죠. 특히 전시되지 않은 유물들은 산중턱의 수장고에 보관되고 있어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만의 역사와 박물관의 시작

대만은 중국 대륙의 동남쪽 해상에 위치한 섬으로, 16세기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지나가며 ‘아름다운 섬(Formosa)’이라 부른 바 있습니다. 대만은 중국 대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17세기 이후 한동안 좋지 않았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까지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후 1949년, 국민당 정부가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철수하면서 오늘날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으로 양분되는 역사적 배경이 만들어졌습니다.
국립고궁박물원은 원래 북경 자금성에 있던 유물들을 기반으로 합니다. 1925년 10월 10일, 신해혁명 14주년을 기념해 자금성을 ‘고궁박물원’으로 개방하면서 대중에게 황실의 유물들이 처음 공개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위해 자금성을 찾았습니다. 1928년에는 ‘중화민국 고궁박물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국민당 정부 직속 기관으로 개편되었습니다.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으로 인해 일본의 침공이 시작되며 유물 보호를 위한 이동이 필요해졌고, 유물은 북경에서 남하해 상하이, 난징 등으로 옮겨졌습니다.


유물의 피난과 대만으로의 이주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유물은 11년간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전시와 보호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이 항복하자 유물들은 다시 난징으로 집결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국공내전이 격화되자 유물은 또다시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국민당 내부에서도 유물을 대만으로 옮기는 것을 두고 찬반이 엇갈렸지만, 장제스 총통은 유물의 보존을 최우선으로 하여 대만으로의 이전을 강행합니다. 당시 대만은 비교적 안정적인 지역으로, 공산 게릴라 활동도 적고 본토에서 고립되어 있어 유물 보호에 적합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결국 약 8만 8천여 점의 도자기, 옥기, 칠기, 인쇄물 등과 15만여 점의 경전, 39만여 점의 왕조 문서 등 총 65만 점의 유물이 세 차례에 걸쳐 대만으로 운송되었습니다. 이는 전체 유물의 약 22%에 해당하며, 비교적 소형이면서도 가치가 높은 컬렉션 중심이었습니다.


대만에서의 재정비와 새로운 시작

대만으로 옮겨진 유물들은 타이중 근처의 사탕수수 공장에 임시 보관되었고, 이후 우펑에 정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1955년부터 본격적인 박물관 복원이 시작되어 1965년 8월, 중화민국의 국부인 쑨원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중산박물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개방되었습니다. 이는 현재 국립고궁박물원의 본관이며, 양명산 기슭에 위치합니다.
건축은 황바오유가 맡았고, 중국 황실 건축 양식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방대한 유물 전체를 전시할 수는 없어 이후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쳤으며, 2002년에는 2,100만 달러를 들여 대규모 리모델링이 이루어졌습니다.


더 넓은 미래를 향해 – 남부분원의 건립

연간 3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고궁박물원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따라, 대만 남부 치기이현 타이바오시에 남부분원을 새롭게 세우게 됩니다. 약 70만㎡ 규모의 이 박물관은 내진 설계를 갖춘 현대적인 건축물로, 2015년 건축가 크리스 야오의 설계 아래 완공되었습니다. 여기에 일본식 정원과 연못 등도 함께 조성되었습니다.
남부분원은 고유의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독창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박물관의 새로운 전시 거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오늘은 세계의 박물관 네 번째 시간으로, 대만 국립 고궁 박물원역사를 알아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








Created by 지식트리 @G_seektree  
CC BY 라이선스 / 교정 by SENTENCIFY  / 편집자 최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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