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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해 역사 1 : 원주민과 식민지

지식트리2025.04.14
목차 📚

📌 먼치 POINT

이번 시리즈는 카리브 지역의 선사시대부터 유럽 식민지 확장 이전까지의 원주민 역사와 문화를 다룹니다. 트리니다드를 비롯한 여러 섬에 정착한 초기 수렵·채집 공동체, 타이노족과 갈리비족 등 주요 원주민들의 생활 방식, 그리고 석기·고대·도기 시대로 나뉜 고고학적 시대 구분을 통해 카리브 해 깊은 뿌리를 들여다봅니다. 콜럼버스의 도착 이후 변화해 간 토착 사회의 모습, DNA 연구를 통해 밝혀진 원주민의 흔적 등, 이 지역이 단순한 식민지 그 이상으로 어떤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들어가기 전에

카리브 해 지역의 역사는 15세기 이후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를 둘러싼 싸움에서 이 지역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카리브 에 도착하여 스페인의 영토라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다음 해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들이 카리브 해 지역에 세워졌습니다. 16세기 초 스페인은 아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정복하였고, 현대 시대의 멕시코와 페루 지역을 탐험하고 정착해 나가기 시작했지만 카리브 해는 여전히 전략적으로 긴장을 풀 수 없었습니다.


1. 고대 원주민

카리브 해의 시작: 선사 시대 정착과 문화의 형성

지금으로부터 약 1만여 년 전 남아메리카의 북부 지역에는 작은 사냥감을 사냥하는 수렵꾼, 어부, 그리고 약탈자들의 집단들이 거주했는데, 이러한 집단들은 종종 잠시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광범위하고 다양한 서식지에서 식물 채집과 사냥 등을 하며 주로 이동하며 지냈습니다.
트리니다드 지역은 기원전 9천년부터 사람들이 정착한 최초의 카리브 섬으로 알려져 있는데, 물론 최초의 정착민들은 대부분 트리니다드가 여전히 남아메리카에 붙어 있던 시대에 랜드 브리지스를 통해 트리니다드에 들어왔습니다.

섬으로의 확산과 사회 구조의 변화

2천년이 흐른 기원전 약 7천년에 이르러 트리니다드는 기후 변화로 해수면에서 약 60미터를 상승하며 섬이 되었습니다. 트리니다드가 섬이 되면서 남아메리카 토착민들은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정착하였고, 초기 주요 거주지들로는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의 반 왈리 트레이스와 세인트존의 조개무지 퇴적지가 있습니다.
현대 시대 역사학자들의 연구에서 카리브 해 선사 시대를 여러 시대들로 분류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다가 1970년대 고고학자 어빙 라우스는 카리브 해 선사 시대를 분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계의 시대를 규정했습니다.

카리브 선사 시대의 세 시기: 석기, 고대, 도기

바로 고고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고대, 그리고 도기 시대로 카리브 해 선사시대에 대한 현재의 문헌은 이 3개의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유용성과 정의에 관해 많은 논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석기 시대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간 발전의 첫 번째 시대이자 타제 석기가 처음으로 사용된 시기로 간주되며, 이어진 고대 시대는 종종 수렵, 어업, 채집이 결합한 전문화된 자급자족 적응 형태, 야생 식용 식물의 관리로 특정 지어집니다. 그리고 도기 시대의 공동체들은 도자기를 만들었으며 소규모 농업을 이용했습니다. 최초의 섬 정착민들이 살아간 트리니다드 이후의 카리브 해 섬들에서는 기원전 3500년에서 3천년 사이의 고대 시대 동안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유적지들은 바베이도스, 쿠바, 퀴라소, 생마르탱에서 발견되었으며, 바로 뒤를 이어 히스파니올라와 푸에르토리코에 정착지들이 생겨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섬마다 달랐던 정착 시기와 살라도이드 부족

B.C 800년에서 200년 사이 새로운 이민 집단이 카리브 해 섬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갔는데, 이 집단은 독특한 도자기가 처음으로 발견된 베네수엘라 엘 살라도이드 유적지의 이름을 따서 살라도이드 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고대 시대와 도기 시대 동안에 많은 카리브 해 섬들에 사람들이 정착하기도 했지만 일부 섬들은 훨씬 나중에 정착하기도 했습니다. 한 예로 자메이카는 기원 후 600년까지 알려진 정착지가 없었으며, 케이맨 제도는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존재했던 정착지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 유럽과 접촉 이전

유럽 도착 이전의 원주민 사회

서기 650년에서 800년까지의 기간 동안 남아메리카 본토와 많은 카리브 해 섬들에서 농업 규모의 증가, 문화적, 사회정치적 특징이 나타나면서 카리브 해 지역 인구는 증가하였으며, 공동체들은 단일 마을 거주에서 정착지 무리를 형성하는 곳으로 변화하였습니다. 9세기에 접어들면서 카리브 해 지역에서도 다른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신분 분화와 계급 서열화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400년이 흐른 13세기 무렵에는 많은 카리브 해 섬들이 대앤틸리스 제도의 사회정치적 구조에 흡수되어 갔고, 이러한 변화는 지역 공동체들의 독립적인 발전을 저해했으며, 훨씬 더 큰 규모의 사회 정치적인 변화 양상을 나타냈습니다.
유럽인들이 도착한 시기에, 카리브 해 섬들에는 세 부류의 주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이 살았습니다. 대엔텔리스 제도와 바하마, 리워드 제도의 타이노족, 혹은 아라와크족, 윈드워드 제도의 칼리나고족과 갈리비족, 그리고 쿠바 서쪽의 시보니족까지 주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이었습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롬버스가 바하마 제도에서 최초로 조우한 부족으로 추정되는 타이노족은 히스파니올라와 푸에르토리코를 차지했던 전통 타이노족, 쿠바, 자메이카와 바하마 군도를 차지한 서부 타이노족, 그리고 리워드 제도를 차지한 동부 타이노족으로 구분됩니다.

DNA 연구로 드러난 아메리카 원주민의 흔적

DNA 연구들은 콜럼버스 도착 이전의 원주민 역사에 관한 일부 전통적 관념을 변화시켰습니다. 2003년 마야구에스의 푸에르토리코 대학 유전학자 후안 마르티네즈 크루사도는 섬 전체에 걸쳐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에 대한 DNA를 설계했습니다. 기존의 역사적 추론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주로 스페인 민족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는 아프리카 혈통이고 나머지 소수는 먼 원주민 혈통을 가진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크루사도의 연구에서 전체 푸에르토리코인 중 61%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가지고 있으며, 27%는 아프리카 혈통, 그리고 12%가 백인 혈통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DNA 분석

이에 대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놀라운 발견 중 하나는 1492년에 시작된 스페인 침략보다 훨씬 앞선 천 년 전에 대부분의 카리브 해 토착 원주민 부족들이 남아메리카에서 유입된 새로운 집단에 의해 정복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스페인이 도착한 시기에 푸에르토리코와 히스파니아올라 같은 섬의 원주민 인구는 과거 추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은 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스페인의 침략과 정복

스페인의 도착과 식민 침략의 시작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항해 직후 포르투갈과 스페인 선박들은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영토들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며 식민지 확장을 시작했습니다. 식민지 개척은 유럽인들의 황금을 벌어들이는데 이용되었고, 이에 따라 영국과 네덜란드, 프랑스 같은 다른 유럽 강대국들도 자신들만의 수익성 높은 식민지를 세우고 싶어 했습니다.
제국 간 경쟁은 수 세기에 걸친 유럽 전쟁 동안 카리브 해 세력 다툼의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19세기 초 스페인계 아메리카 점령지들의 독립 전쟁에서 대부분의 스페인 점령지가 스페인 제국에게서 벗어났지만,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는 1898년의 아메리카, 에스파냐 전쟁 전까지 스페인 제국의 점령지로 남아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첫 번째 항해 도중 바하마의 루카야 족, 쿠바와 히스파니올라 북부 해안의 타이노족과 접촉하며 소수의 원주민들을 스페인으로 데려갔습니다.

유럽 열강의 식민화와 노예제 확산

이들의 개인 장신구와 가면, 벨트 같은 여러 물품에서 발견된 상당한 양의 황금은 스페인이 보물을 찾아 나서도록 만들었고, 아메리카 원주민 노동력을 보완하기 위해 스페인은 아메리카 땅에 아프리카 노예들을 들여왔습니다. 스페인은 전체 카리브 해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했지만 이들은 오직 히스파니올라, 푸에르토리코, 자메이카, 쿠바, 트리니다드 같은 큰 섬들에만 정착하였고, 또한 진귀한 진주층이 발견된 베네수엘라 연안의 작은 섬들인 쿠바구아와 마가리타 같은 진주 섬에 정착하면서 진주는 1508년에서 1530년 사이에 광범위하게 채집되었습니다.
이후 아메리카에 정착한 스페인 제국에서 유럽의 질병들이 유입되며 지역의 원주민 인구가 감소하여 쇠퇴하게 되었고, 이 기회를 틈타 다른 유럽 열강들이 카리브 해 입지를 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네덜란드, 프랑스와 영국이 차례대로 카리브 해 지역에 들어와 오랫동안 체류했는데, 이들은 카리브 해 섬들에 걸쳐 확산된 열대 농장 시스템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납치한 수백만 명의 노예들을 데려왔습니다.



마무리하며

오늘은 카리브 해 역사 첫 번째 시간으로 카리브 해 지역의 원주민들과 유럽의 식민지 활동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럼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

Created by 지식트리 @G_seektree  
CC BY 라이선스 / 교정 by SENTENCIFY  / 편집자 최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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