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져버린 지드래곤의 스승, 페리 🌪️
초창기 YG와 지드래곤의 스승 페리의 이야기 정리•요약
1. YG와 페리의 부상
비판 속 출발: YG는 상업성·자작 논란 등으로 힙합 팬들에게 외면받던 시절이 있었다.
페리와 지드래곤: 페리는 솔로 앨범에서 지드래곤을 YG 공식 데뷔시키며 키워냈다.
정체성 확립: 지누션·원타임·YG 패밀리 등을 통해 YG만의 흑인음악 기반 사운드를 완성했다.
2. 페리의 퇴장과 실종
테디의 부상: 페리의 제자였던 테디가 빅뱅·2NE1 시대를 이끌며 메인 프로듀서가 되었다.
조용한 이탈: 2010년대 초부터 활동이 중단되었고, 계약 만료 전 YG에서 사라졌다.
행방불명: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실종 상태이며, 루머만 무성할 뿐 정확한 행적은 없다.
초창기 YG와 힙합 팬들의 반응
현재 한국의 4대 기획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YG 엔터테인먼트의 시작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현석 전 대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기획자로 변신해 1996년 3월 자신의 이름을 따와 ‘현기획’을 설립했습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뉴잭스윙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그룹 킵6를 데뷔시켰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MF 엔터테인먼트’로 사명을 변경하고 듀스의 이현도와 공동 프로듀싱을 맡아 지누션을 제작했습니다. 이들의 <마레조>, <가솔린>, <내가> 등의 곡이 히트하면서 양현석은 본격적인 제작자로서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그 후, 양현석의 별명을 따와 ‘양군기획’으로 사명을 변경한 뒤, 자신의 솔로 앨범과 함께 원타임, YG 패밀리를 출범시키며 YG 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최종 변경했습니다.
YG는 힙합과 R&B 등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선보이며 자신들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 힙합은 컨셔스(Conscious)한 면모가 강조되던 시기였기에, YG는 일부 힙합 팬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나치게 상업적이다", "몇몇 멤버들의 랩 실력이 부족하다", "래퍼가 자신의 가사를 직접 쓰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죠.
YG의 핵심 프로듀서, 페리
그러나 YG를 비판하던 힙합 팬들조차 인정한 뮤지션이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페리’(Perry)였습니다. 페리는 양현석의 솔로 활동 당시 처음 모습을 드러냈지만,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YG 패밀리 시절이었습니다. 이국적인 외모, 염색한 머리, 컬러 렌즈 착용 등 파격적인 비주얼로 사람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죠. 그는 YG 초창기 대부분의 곡을 프로듀싱하며 YG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어 실력은 부족했지만, 영어 랩 한정으로 뛰어난 랩 실력을 선보였죠.
페리의 본명은 페리 토마스 보르하(Perry Thomas Borja)이며, 일본과 마리아나 제도에 거주하는 차모로족 혼혈로 추정됩니다. MC 해머와 투쇼트 등의 래퍼를 배출한 오클랜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990년경 가족이 있는 괌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YG의 대표 프로듀서로 자리 잡다
그는 비보이 활동을 시작으로 DJ, 그리고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점차 힙합 음악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누션의 션을 만나게 되었고, 션은 그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후 한국으로 먼저 건너간 션이 지누션을 준비하면서 페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지누션, 양현석, 원타임 등의 주요 곡을 프로듀싱하며 YG의 대표 프로듀서로 자리 잡게 됩니다.
원래 페리는 지누션 1집만 제작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을 하려던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YG는 그의 특출난 능력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결국 그는 한국에 남아 YG의 음악적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가 프로듀싱한 대표곡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누션 - <Jinusean>, <이제 더 이상>, <태권 V>, <How Deep Is Your Love>
양현석 - <악마의 연기>
원타임 - <1TYM>
YG 패밀리 - <우리는 Y.G FAMILY>
테디와 지드래곤의 스승
페리는 YG에서 대다수 곡을 작업하며 엄청난 작업량을 자랑했고, 곡들의 퀄리티도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샘플링 없이 MPC 3000과 프로툴스를 활용해 독창적인 사운드를 구축하며, YG의 음악적 색깔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의 곡들은 웬만한 한국 래퍼들의 곡보다 확실히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습니다.
또한, 프로듀서로서뿐만 아니라 가끔 래퍼로도 피처링에 참여하며 그의 솔로 앨범을 기대하게 만들었죠. 솔로 앨범 발매 전, 주목할 만한 커리어 중 하나는 지누션의 세 번째 앨범 《The Reign》 참여였습니다. 2001년 2월 발매된 이 앨범은 전설적인 외국 힙합 그룹 사이프레스 힐의 비리얼, 맙딥의 프로디지, 치노 엑셀, 그리고 일본의 힙합 그룹 엠플로 등이 피처링진으로 참여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페리의 뛰어난 실력에 놀란 비리얼이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지만, 페리는 YG와의 의리를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YG에 남아 테디와 지드래곤 등 YG 뮤지션들에게 프로듀싱 기법을 전수하며, 2년 후 YG의 성장을 견인하는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2001년, 솔로 앨범 《By Storm》 발매
모두의 기대 속에 2001년 9월, 페리의 솔로 앨범 《By Storm》이 발매됩니다. 그는 “스톰(Storm, 폭풍)이라는 강한 이미지를 힙합과 결부시켜 어둡고 강렬한 음악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그는 이 강한 바람의 이미지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던 듯합니다. 앨범 속지에서는 “a. k. a. Blizzard Child”라는 또 다른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첫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은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지만, 케이팝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곡이기도 합니다. 현재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한 지드래곤의 YG 데뷔곡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드래곤의 등장
사실, 지드래곤은 이미 다른 곳에서 힙합 씬에 데뷔한 상태였습니다. 13살의 나이에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 《2001 대한민국 힙합 플렉스》에서 ‘2G-gon(지용)’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바 있었죠.
당시 미국에서는 릴 바우 와우 등 어린 래퍼들이 등장하고 있었고, 한국에서도 SM 엔터테인먼트의 보아, JYP 엔터테인먼트의 량현량하 등 지드래곤 또래의 가수들이 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션은 어린 지드래곤을 눈여겨보았고, 양현석 대표에게 추천해 13살의 어린 나이에 YG 패밀리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드래곤은 페리의 타이틀곡으로 YG에서의 첫 공식 데뷔를 하며, 이는 K-POP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됩니다. 타이틀곡뿐만 아니라 <G-DRAGON>이라는 제목의 곡이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프로듀싱과 영어 랩만 페리가 담당했으며, 나머지는 어린 지드래곤이 주도한 곡으로, 당시 YG가 지드래곤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했음을 보여줍니다.
양현석의 마지막 랩
페리의 앨범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포인트는 바로 양현석의 마지막 랩을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마지막 랩이 디스곡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디스곡에서 양현석의 타깃은 바로 음치 가수 이재수였습니다.
2001년, 이재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을 패러디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음반까지 발매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에 원작자인 서태지가 그를 고소하기까지 했죠. 이에 분노한 양현석은 이재수를 겨냥한 디스를 쏟아냈습니다.
또한, 2001년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러시 아워 2>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Get Ready>는 YG 패밀리 멤버들이 모두 참여한 곡으로, 어느 정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화려한 피처링 라인업, 그리고 아쉬움
페리의 앨범에는 YG 소속 래퍼들뿐만 아니라 45RPM의 허인창, 후니훈, DJ 머프 등 언더그라운드 래퍼들도 대거 참여하며 강한 존재감을 발휘했습니다. 실제로 14트랙 중 피처링이 없는 곡은 단 한 곡뿐일 정도로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죠.
피처링진이 많아 페리 본인이 묻히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압도적인 래핑과 독특한 질감의 비트는 앨범 내내 살아 있었고, 앨범의 통일성을 유지했습니다. 초창기 한국 힙합 역사에서 이처럼 세련되고 일관된 사운드를 가진 앨범은 드물었을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페리가 한국어 랩에 대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피처링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적절한 피처링 구성을 통해 그의 랩이 더 부각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페리는 이 앨범을 솔로 래퍼 페리의 앨범이기보다는, 프로듀서 페리의 앨범으로 기획했다고 밝혔습니다.
YG의 변화와 페리의 자리 이동
이후 페리는 음악 트렌드 변화와 YG의 방향성 변화로 인해 점차 메인 프로듀서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페리가 작곡한 렉시의 <애송이>가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YG 엔터테인먼트는 2000년대 중반부터 빅뱅과 2NE1 등의 보이그룹과 걸그룹 양성에 집중하게 되죠.
당시 페리는 초창기 빅뱅의 곡들을 프로듀싱하긴 했지만, 그렇게 큰 히트를 기록하진 못했습니다. 게다가 페리에게 프로듀싱을 배웠던 원타임의 테디가 점점 YG의 메인 프로듀서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용감한 형제, 스토니 스컹크 출신의 쿠시, 초이스37 등의 프로듀서들이 등장하면서 그는 점점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페리의 갑작스러운 실종
흥미로운 점은 페리가 2013년 3분기까지도 YG 엔터테인먼트 소속 프로듀서로 등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이름이 YG에서 사라지게 되죠. YG와의 계약 기간은 2005년 6월부터 2015년 6월까지였지만, 계약 만료 전부터 페리의 존재가 YG에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2015년 계약 만료까지 그는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조용히 YG를 떠난 듯 보였습니다.
2021년, 페리의 조카에 의해 갑자기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페리는 2010년부터 가족들과 연락이 끊겼으며,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고 합니다. 심지어 미국 국무부에 실종 신고까지 했지만,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다고 하네요. 페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페리의 실종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루머와 음모론이 제기되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루머, 2012년에 고향인 오클랜드에서 레이블을 차릴 계획이 있었다는 이야기, YG와의 불화설까지. 그러나 어떤 것도 확실한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페리가 아무 문제 없이 새로운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가 YG에 남긴 음악적 유산이 한 사람이라도 더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뮤직 메카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도 더 재미있는 음악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Created by 뮤직메카 @musicmeccatv
교정 by SENTNECIFY / 편집자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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