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는 왜 그때 켄드릭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
1. 그래미의 외면에서 5관왕까지
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가장 빛난 주인공은 아무래도 켄드릭 라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는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를 포함해 총 5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이번 시상식 최다 수상자가 되었죠.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모두가 인정하는 힙합 명반이자 클래식으로 손꼽히는 《good kid, m.A.A.d city》가 그래미에서 최다 후보에 올랐음에도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리고 과연 켄드릭을 제치고 상을 거머쥔 주인공은 누구였을까요?
2. 켄드릭 라마,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차세대 주자
켄드릭 라마는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성지라 불리는 LA 컴튼 출신입니다. 2011년, 데뷔 앨범 《Section.80》을 발표하며 깊이 있는 가사와 뛰어난 랩 실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떠오르는 힙합계의 신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죠. 그리고 같은 컴튼 출신이자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닥터 드레의 선택을 받아, 그의 레이블 애프터매스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Section.80》을 통해 흑인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과 탁월한 랩 실력을 보여준 켄드릭 라마는 닥터 드레의 후원을 받으며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그의 메이저 데뷔 앨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고, 마침내 2012년, 켄드릭의 본격적인 메이저 데뷔작 《good kid, m.A.A.d city》가 발매됩니다.
3. 《good kid, m.A.A.d city》
켄드릭 라마의 메이저 데뷔 앨범 《good kid, m.A.A.d city》는 그의 고향 컴튼을 배경으로 한 콘셉트 앨범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 픽션을 가미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이야기를 완성했죠. 앨범의 핵심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빈민가 ‘m.A.A.d city’에서 자란 한 소년 ‘good kid’가 갱과 범죄에 휘말리면서 점점 나락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 죽을 고비까지 넘기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종교를 통해 참회하며 새로운 삶을 찾게 되죠.
켄드릭은 흔히 갱스터랩에서 다뤄지는 범죄, 돈, 여성 등의 소재를 단순한 과시가 아니라 강렬한 내러티브 속에서 재구성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촘촘한 랩과 섬세한 표현을 통해 흑인 사회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냈죠. 하지만 단순히 거칠고 비참한 삶을 묘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강조하며 흑인 사회가 처한 구조적 문제를 통렬히 비판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악순환을 젊은 세대에서 끊어내야 한다는 희망과 교훈까지 전달하며 깊은 울림을 줍니다.
4. 90년대 힙합 스타일의 재해석
《good kid, m.A.A.d city》가 주목받은 것은 뛰어난 스토리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유행하던 트랩 사운드를 배제하고, 오히려 90년대 힙합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죠.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기틀을 닦은 닥터 드레가 소속 레이블 수장으로 있음에도, 그의 색채는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신 켄드릭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작업했던 사운드웨이브, 데이브 프리 등의 TDE 소속 프로듀서들과 함께 앨범을 완성시킵니다. 특히, 디지 플러스 포닉스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듀서들의 참여로, 앨범은 단순한 콘셉트뿐만 아니라 사운드적인 유기성까지 갖추게 되죠.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사운드는 재즈, 소울, 펑크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더욱 실험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이는 마치 아웃캐스트나 더 루츠의 프로덕션을 연상시키기도 하죠. 켄드릭은 컴튼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웨스트코스트 힙합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양한 흑인 음악 스타일을 결합해, 《good kid, m.A.A.d city》를 단순한 갱스터랩이 아닌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 완성시켰습니다.
5. 모두가 인정한 명반
켄드릭 라마는 이 앨범이 발매된 후 클래식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이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good kid, m.A.A.d city》는 “제2의 《Illmatic》이다”, “새로운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왕이 나타났다”라는 찬사를 받았어요. 당연히 2012년 대다수 매체의 올해의 앨범 리스트 상위권에 오르게 되었죠.
이 앨범은 현재도 2010년대를 대표하는 힙합 명반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찬사와 함께 상업적 성공도 거뒀으며, 2014년 열린 제5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 베스트 뉴 아티스트, 베스트 랩 앨범, 피처링 곡을 포함해 무려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최다 부문 후보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모두들 주요 부문은 몰라도 랩 부문 수상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6. 예상치 못한 복병
하지만 이럴 수가! 켄드릭 라마는 그래미에서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면서 단 한 개 부문도 수상하지 못하게 됩니다. 켄드릭이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상들은 뜻밖에도 시애틀 출신의 백인 힙합 듀오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가 받아가게 되었죠. 그렇다고 해서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가 갑자기 등장한 뮤지션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두 개의 빌보드 넘버원 싱글을 내며 큰 인기를 끌고 있었어요. 래퍼 맥클모어는 2000년대부터 믹스테이프와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하던 뮤지션이었고, 프로듀서 라이언 루이스는 사진·영상 작가로 일하며 프로듀서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2009년 두 사람은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라는 팀을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죠.
7.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켄드릭 라마가 떠오르던 시기와 비슷했습니다. 2012년, 미국에서는 주마다 동성결혼 합법화 여부를 두고 사회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는 동성 결혼을 지지하고 힙합 문화 내 동성애 혐오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싱글 〈Same Love〉를 발표했습니다.
이 곡은 LGBTQ+ 커뮤니티의 앤섬이 되며 큰 화제를 모았죠. 뿐만 아니라, “내가 빈티지숍에서 산 할아버지 옷을 입어도 멋지다.”라며 래퍼들의 과시적인 소비 문화를 풍자한 〈Thrift Shop〉이 빌보드 핫 100에서 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재발매된 싱글 〈Can’t Hold Us〉 역시 빌보드 핫 10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이들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는 백인이었지만 기존 힙합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습니다. 컨셔스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기존의 힙합 흐름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죠. 또한, 주류 미디어의 대형 프로모션 없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성과를 이뤄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는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 ‘올해의 신인상’, 그리고 힙합 부문 등 다양한 후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차트와 영향력 면에서 두각을 나타냈어도 켄드릭 라마의 아성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고, 당연히 켄드릭 라마의 수상이 유력하다고 보았습니다.
8. 제56회 그래미, 논란의 중심
그렇다면 2014년에 열린 제56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켄드릭 라마와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가 모두 후보에 오른 ‘올해의 앨범’ 부문은 다프트 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가 수상하며 논란 없이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올해의 신인상’ 부문은 후보진부터 쟁쟁했습니다.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와 켄드릭 라마 외에도 당시 영국 전자 음악계의 떠오르는 샛별 제임스 블레이크, 컨트리의 젊은 신성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그리고 설명이 필요 없는 에드 시런까지 이름을 올렸죠.
더 큰 쟁점이 된 것은 두 아티스트가 동시에 후보에 오른 ‘베스트 랩’ 부문이었습니다. ‘베스트 랩 퍼포먼스’ 후보만 보더라도 켄드릭 라마의 〈Swimming Pools (Drank)〉,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대히트곡 〈Thrift Shop〉, 에미넴의 〈Berzerk〉, 드레이크의 〈Started From the Bottom〉, 그리고 제이지의 〈Tom Ford〉까지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었습니다.
‘베스트 랩 앨범’ 부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켄드릭 라마의 《good kid, m.A.A.d city》뿐만 아니라,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The Heist》, 드레이크의 《Nothing Was the Same》, 제이지의 《Magna Carta... Holy Grail》, 예의 《Yeezus》까지 강력한 후보들이 맞붙었죠.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가 ‘올해의 신인상’을 포함해 랩 부문 4개 중 3개를 수상하게 됩니다. 반면, 최다 노미네이트를 기록했던 켄드릭 라마는 단 하나의 그래미 트로피도 받지 못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9. 그래미는 백인을 사랑해?!
이 수상 결과는 그래미의 대표적인 이해할 수 없는 결정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래미는 왜 켄드릭 라마를 외면하고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에게 트로피를 안겼을까요? 두 팀 모두 컨셔스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접근 방식과 타깃층은 상당히 다릅니다. 켄드릭 라마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흑인 사회의 현실을 진지하고 심도 깊게 음악으로 풀어냈습니다. 반면,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는 팝적인 사운드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유머러스하고 자기계발적인 메시지를 내세웠죠.
결정적으로, 맥클모어는 백인이었습니다. 그래미가 랩 부문에서 비흑인 아티스트들에게 유독 관대한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 역시 그 연장선이라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사실 켄드릭뿐만 아니라, 비기, 퍼블릭 에너미, 아이스 큐브, 스눕 독, 나스 같은 힙합 레전드들 역시 뛰어난 앨범을 발표하고도 그래미의 외면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가 켄드릭 라마를 제치고, 특히 베스트 랩 앨범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맥클모어는 이후 켄드릭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 "내가 이 상을 강탈당했다. 네가 받아야 했어. 나도 이 상을 받은 게 짜증 난다"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켄드릭은 "맥클모어 역시 받을 자격이 있었다"며 그의 성공을 기원했지만, 그래미가 힙합 음악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죠.
맥클모어는 자신이 백인이라는 점이 그래미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음을 인지하고 있었고, 두 번째 앨범은 아예 그래미 심사에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017년,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는 두 번째 앨범을 끝으로 해체했고, 현재 맥클모어는 솔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0. 그래미의 변화
한편, 2025년 열린 제67회 그래미 시상식은 켄드릭에게 그간의 보상을 제대로 해준 듯한 무대였습니다. 그래미가 단순히 켄드릭 한 사람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외면했던 흑인 뮤지션들에게 일종의 보상을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죠. 그래미는 그간 백인, 특히 금발의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주요 부문을 몰아주는 경향을 보였는데요.
그러나 67회 그래미 시상식의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역대 최다 그래미 수상자임에도 단 한 번도 '올해의 앨범'을 받지 못했던 비욘세가 마침내 그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After Hours>로 차트를 휩쓸었지만 후보조차 오르지 못해 보이콧을 선언했던 위켄드는 그래미 무대에 섰습니다. 또한, 그래미의 단골 수상자인 테일러 스위프트와 빌리 아일리시는 이례적으로 주요 부문에서 무관에 그쳤죠.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 켄드릭 라마였습니다. 그는 Not Like Us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등 주요 부문 포함 총 5관왕을 차지하며 그래미의 중심에 섰습니다. 2024년, 드레이크를 저격하는 디스곡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Not Like Us>였지만, 대중은 그래미가 디스곡에 주요 부문을 안겨주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죠.
그러나 2014년, 《good kid, m.A.A.d city》로 주요 부문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켄드릭이 주요 부문을 휩쓸며 2025년 그래미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켄드릭 라마는 현재까지 그래미 총 22회 수상, 2025년 기준 그래미를 가장 많이 받은 래퍼 3위에 오르게 됩니다. 과거,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를 남긴 그래미였지만 이제는 변화된 모습을 약속한 만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지켜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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